(어른)오직 예수만 보이더라(눅9:28~36)-2025. 3. 2. 주님의 산상 변모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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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Mff3iSwTIsQ?si=Cnv0haf3l4B3sA9N
(본문 중)
교회력에 따르면 오늘은 주님의 산상 변모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변화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복음서도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변화하신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산상 변모 주일이 끝나면 모든 교회는 사순절에 들어갑니다.
약 40일 동안, 교회는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을 기억하며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사순절 뒤에 올 부활절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 주일의 복음서 말씀은 늘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신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변화를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산 위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첫번째는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변화하신 모습을 보이셨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성서에 쓰여져 있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예수님께서 변화하시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변모하셨고, 이를 제자들에게 보이셨던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는 “왜 복음서의 저자는 이 변모의 사건을 기록했을까?”라는 것입니다.
이 역시도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왜 이 말씀이 사순절이 시작되는 주일의 복음서로 정해졌을까?”라는 것입니다.
이런 궁금증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다가 이 모든 것이 단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제자들에게, 또 모든 교회에게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고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 뒤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바랬던 독립도, 지금 우리들이 바라는 평범한 행복도 죽음 뒤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고, 그 끝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게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이라는 것이 바로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도저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죽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있고, 어떻게 메시야의 일이 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예수께서 기적을 행한다고 하지만, 그 기적조차도 죽음 후에는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자들 사이에서는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신 후 “팔 일동안”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계셨을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신 지 팔 일이 지나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었습니다.
옷은 희어졌고, 광채가 났습니다.
그 순간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들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낸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의 죽음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의 제1봉독이었던 신명기 34장에서는 모세의 죽음에 대해 쓰여져 있지만, 그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도 쓰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유대인들은 아직 모세가 할 일이 남아 이 땅에서 죽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야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왕기하 2장을 보면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마지막이었으니 엘리야도 이 땅에서 죽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간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알 수 없는 이 두 사람이 나타나 변화된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제는 “별세”에 대한 것입니다.
31절의 말씀입니다.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
우리가 알고 있는 “별세”는 세상과 이별했다는 뜻으로 죽음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별세”는 헬라어로 “엑소더스”라고 합니다.
“엑소더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지요?
구약성서 출애굽기의 원 이름이 바로 “엑소더스”입니다.
그리고 “엑소더스”는 “나오다, 벗어나다, 떠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집트에서의 안정된 생활 떠났기에 출애굽기에 “엑소더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말한 것은 일반적인 죽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 이 세상의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참 재미있지요?
이 땅에서 죽음을 알 수 없는 두 명의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의 끝이 되는 죽음이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나는 것, 이 세상의 바름과 가르침과 풍조에서 떠나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변화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이었고, 복음서의 저자는 이 변화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 말씀을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 주일의 복음서로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이 끝이 아닌 이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변화의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하지만 여전히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32절에 쓰여진 말씀대로 그들이 깊이 졸다가 깨었기 때문입니다.
설교 시간에 졸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예수님 말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전혀 엉뚱한 이야기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설교 시간에 졸면 되요? 안 되요?
설교 시간에 가급적 졸지 않는 착한 성도님들이 되길 바랍니다.
다시 32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여러분, 베드로와 제자들이 졸다가 깨어나서 본 것은 뭐예요?
예수님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의 별세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듣지 못한 거예요.
그러니 영광만을 본 베드로는 별세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합니다.
33절입니다.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이것이 영광만을 본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죽음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영광만을 본 사람들은 그저 지금이 좋고, 여기가 좋은 것 뿐입니다.
그래서 이 곳, 이 땅에서 초막을 짓고 살고 싶어 합니다.
호세아서 12장, 스가랴서 14장에는 이스라엘의 명절인 초막절에 이루어질 이스라엘의 영광이 쓰여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초막절에 모든 이방 나라들을 굴복시키시고 예루살렘에 금은보화와 의복들을 가져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겠다는 것은 이것, 자신들의 영광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이 세상을 떠나는 것, 즉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모든 축복을 가져오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을 포함해서 이 세상에서 축복받고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 믿고 복 받기를 원하고, 걱정 근심 없이 이 땅에서 장수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의 풍조와 돈과 명예를 떠나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좋은 차, 좋은 집, 많은 월급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죽음을 끝이 아니라 떠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가슴에 품고 살 수 있고, 부활을 기대하며, 십자가의 길을 즐겁게 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이 곳에서 초막을 짓고 영광을 누리며 살고 싶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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