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예수를 따르니라[제자가 된 사람들](눅5:1~11)-2025.2.9.주현일 후 다섯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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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i4ydf3bNP7I?si=w6_8_DYQJWjyxuvv
(본문 중)
오늘의 복음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대표적인 예수님의 제자는 12명입니다.
그 중에 부르심을 받기 전 직업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습니다.
복음서 전체에 따르면, 12명 중 4명은 어부였습니다.
1명은 세리였고, 1명은 열심당원이었습니다.
나머지 6명에 대한 직업은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서는 어부를 제자로 부르시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저는 이 부르심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왜 어부와 세리와 열심당원에 대한 부르심은 쓰여져 있는데, 나머지 6명에 대한 부르심은 쓰여져 있지 않은가? 라는 것입니다.
이 6명이 다른 제자들보다 영향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복음서를 기록한 기자가 나머지 6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기록하지 못한 것인가?
여러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 어부와 세리와 열심당원이 가지고 있는 직업의 특수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시 세리와 열심당원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세리는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는 사람이었고, 반대로 열심당원은 로마와 무력으로 싸우는 반(反)정부군이었기 때문입니다.
둘 다 일상생활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부는 어땠을까요?
어부 역시도 썩 좋은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갈릴리 호수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지리의 특성상 물고기를 자주 먹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르면 먹어도 되는 물고기가 있고, 먹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물고기가 정해져 있습니다.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물고기는 먹어도 괜찮지만, 비늘과 지느러미가 없는 물고기는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레위기 11장 11절에 따르면 비늘과 지느러미가 없는 물고기는 그 주검도 가증히 여기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가증히 여기라는 말은 피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물로 물고기를 잡다보면, 부정한 물고기들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정한 물고기들이 그물 안에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부들은 물고기를 골라내야 하기 때문에, 부정하고 피해야 하는 물고기에 손을 댈 수 밖에는 없습니다.
즉, 어부들은 율법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부라는 직업 역시도 좋은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어부들을 자신의 제자로 부르십니다.
세리도 부르셨고, 열심당원도 부르셨습니다.
또한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머지 6명의 제자들도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르심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일까요?
“부르심에는 구분이나 차별이 없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무엘상 16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있어서는 “무슨 일을 하는가, 얼마나 좋은 환경에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중심이 중요합니다.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다면, 어부이든, 세리이든, 열심당원이든 관계없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사장이든, 율법학자이든, 바리새인이든 부르심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시몬 베드로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 오르신 배도 베드로의 배였고,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한 것도,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신 것도 베드로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 모든 말씀을 따랐습니다.
밤을 새도록 물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해 짜증이 났어도, 일과를 정리하려고 그물을 씻고 있는데 배를 떼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도, 정리도 다 못했는데 예수님이 자신의 배에 오르셔서 설교를 하셨어도, 심지어 다시 그물을 내리라는 말에도 베드로는 우선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얻어진 것은 만선이었습니다.
가득한 물고기로 그물이 찢어졌고, 두 배가 잠길 만큼의 만선이었습니다.
지난 밤의 수고가 무색할 만큼, 엄청난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런데 이 때 베드로가 어떻게 합니까?
8절의 말씀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만일 제가 베드로의 자리에 있었다면, “이거 왠 떡이냐!! 땡잡았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고 누구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눈 앞의 물고기들만 보았을 것입니다.
동료들을 더 불러 모아 한 마리도 도로 바다에 빠지지 않게 했을 것입니다.
감사는 나중에!! 지금은 돈이 되는 물고기만 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 모든 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잡힌 물고기도, 만선의 배도, 열심히 물고기를 주워담는 동료도…
그 어떤 것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보신 베드로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이렇게 베드로는 예수께서 첫번째로 부르신 제자가 됩니다.
유능한 랍비도, 제사장도 아닌 어부가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이 부르심의 자리에서 재미있는 일 하나를 보여줍니다.
다른 복음서에 따르면 베드로가 부름을 받은 후, 야고보와 요한이 부름을 받습니다.
마태복음도 마가복음도 이 순차적인 부름을 말합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야고보와 요한이 부름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몬의 동업자였던 야고보와 요한은, 시몬이 부름을 받자 함께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잡았던 모든 물고기와 그물과 배까지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이 역시도 야고보와 요한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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