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 어른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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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구를 위한 주일성수인가
본문: 막2:23~28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십계명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나 과거 교회의 신앙인들은 이 조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이 안식일 법은 사실상 과거의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이었고, 그것도 지키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안식일 법은 우리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안타깝게도 “주일성수”라는 명목으로 우리의 신앙 생활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저에게 “주일 성수가 필요한가”라고 물어본다면 필요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 성수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신앙의 법처럼 되어 버린다면 저는 그런 주일 성수에 대해서는 반대할 것입니다.

주일 성수라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한 날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날로서, 성도들의 거룩한 교제를 위한 날로서 지키는 것이기에 주일 성수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일이라는 날에 특별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루터교회는 일요일만을 주일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예배를 위해 모일 수 있는 날이 주일입니다.
만일 토요일에 예배로 모인다면, 토요일이 주일이 되는 것입니다.
월화수목금토일 중 어느 날도 주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가 주일을 정하는 것이지 주일이 예배를 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주일이 안식일과 다른 점입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는 이 안식일의 논쟁이 쓰여져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논쟁에서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주일 성수를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여러분,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존재합니까? 아니면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합니까?
이 질문이 어렵다면 안식일을 빼고 법을 한 번 넣어 봅시다.
사람이 법을 위해서 존재합니까? 법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합니까?
법이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지요.
우리가 법을 지키면서 사니까 법이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 같지만, 실상 법은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 합니다.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공평하고 정당하게 살기 위해 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 성서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십계명을 기초로 해서 율법이 만들어집니다.
즉,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이전에는 율법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 그리고 셀 수 없이 수 많은 사람들은 율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살았고, 하나님을 만났고, 마음의 법에 따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모세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이 주어진 것은…
목사나 신학자들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모세와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애굽한 광야 공동체를 공평하고 정당하게 통솔하기 위해서는 법과 규칙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출애굽기 18장 13절에는 십계명과 율법이 주어지기 전의 모세와 광야 공동체의 상황이 쓰여져 있습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법과 규칙이 없었기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모세는 자신의 하루 일정 모두를 재판에 쏟아 붓고 있었습니다.
백성들도 모세의 재판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와 광야의 공동체에게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모세의 재판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과 율법으로 공동체가 스스로 재판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이렇게 주어진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 율법이 주어진 것이지, 율법을 위해 사람이 희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의 쟁점이 된 안식일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초의 안식일의 율법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2절의 말씀입니다.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안식일이라는 말 그대로, 쉬기 위해서 안식일이 주어진 것입니다.
사람의 쉼 뿐만 아니라 소와 나귀들, 가축들의 쉼을 위해서도 안식일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대의 안식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에 쉬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안식일 법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본질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쉬기 위한 안식일이 아닌 법을 지키기 위한 안식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법을 지키는 것에 민감한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길을 가며 밀 이삭 몇 개를 딴 것으로 문제를 삼은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에는 쓰여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에는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 몇 개를 따서 먹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밀 이삭 몇 개로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시장기가 해결될 수는 있겠지요.
신명기 23장에도 이웃의 밭에서 밀알 몇 개를 따 먹는 것은 괜찮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이를 문제 삼은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다윗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다윗 역시도 율법, 성전 법을 어긴 적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에 성전으로 몸을 피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성전에는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떡이 있었는데, 다윗의 요구로 아비아달이라는 대제사장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떡을 줍니다.
이는 율법을 크게 어긴 것으로 다윗 뿐만 아니라 다윗의 부하, 대제사장 아비아달까지 율법을 어긴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이를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겼고, 구약 성서 어디에서도 이를 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율법 위반이 정당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기는 것과 지키는 것, 이 두 가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좀 더 본질적인 것이 있다는 것, 종교적인 규범과 행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안식일에도, 우리들의 주일 성수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신앙적인 일에도 적용할 수가 있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 좋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교육하고 자녀들에게 지키게 해야 합니다.
주일 성수하고, 복음을 전하고, 봉사하고, 예배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출발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빠져 있으면 안 됩니다.
법과 규칙이 우리 신앙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법과 규칙의 본질을 파악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복음서의 안식일 논쟁의 해답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일 성수에 대한 해답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주일 성수 왜 하세요?
주일 성수 하면 축복 받으니까 하세요? 아니면 주일 성수 안 하면 벌 받을까봐 하세요.
우리가 주일 성수를 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누가 강제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벌을 피하거나 축복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내 신앙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주일의 예배가 내 쉼이 되기 때문에, 말씀과 성만찬으로 평안을 얻기 때문에, 교회의 교제가 기쁨이 되기 때문에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의 본질은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 주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를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복음서 마지막 절에 예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신앙 생활의 모든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를 기억하고 모든 속박에서 자유하시길 바랍니다.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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