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시련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눅24:13~35)-2026.4.19.부활절 셋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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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yT3mlQEvdow?si=c2mMjfPKaMjHNR2I
(본문 중)
오늘 우리의 제1독서는 사도행전 2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칠칠절이 되자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이 때 성령이 내려오셨고,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 설교를 하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이 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자그마치 3천명이나 되었고, 모든 사도들을 그들을 가르치고 서로 교제하고 기도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었고,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이 세상에 새 물결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음서는 이런 장대한 장면과는 조금 다릅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이 성령 강림이 있기 약 50일 전의 이야기입니다.
50일 전의 제자들은 침울하고 애통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열 두 제자가 아닌 그 외의 제자들도 모두 침울하고 애통해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했고, 이로 인해 모든 소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슬픔 가운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만일 오늘의 복음서에서 나오는 제자들이 약 50일 후 일어날 성령 강림을 알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단 한 번의 설교로 3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과연 슬퍼만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을까요?
몇 일 전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우리 집 막내가 티셔츠에 친구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가득 붙이고 집에 왔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에게서 받은 것이었습니다.
참 소중하게 여기며,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 침대에서 잠깐 낮잠을 잤는데, 자는 도중 몸을 뒤척이다가 옷에 붙인 스티커가 다 떨어졌습니다.
이를 보고 얼마나 슬퍼하던지… 친구 이름 스티커가 사라졌다고 엉엉 울었습니다.
친구가 사라진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달래도 소용 없었습니다.
내일 다시 친구 만나니까 괜찮다고 말해도 울음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자 괜찮아졌습니다.
유치원에 가면 친구 이름 스티커 보다도 좋은 친구가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다음 날 우리 집 막내는 기분 좋은 얼굴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제는 그렇게 슬퍼했는데… 다음 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슬픔을 모두 까먹었습니다.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실컷 놀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겪는 시련이라는 것은 마치 이런 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의 미래도 알지 못하니, 지금의 자신의 상황에만 푹 빠져 있는 것입니다.
내일 만날 친구는 생각하지 못하고, 지금 사라진 스티커에만 관심이 가 있습니다.
그래서 슬퍼하고, 마음 아파합니다.
물론 슬퍼할 때는 슬퍼하고, 마음 아파할 때는 마음 아파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슬퍼만 하고 있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일, 기쁜 일들을 시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기쁜 일들로 우리들의 모든 슬픔과 아픔을 씻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담대하십시오.
지금의 상황에 너무 기죽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로운 일을 기대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50일 후 일어날 성령 강림 사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좋은 일들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엠마오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3절에 적힌 대로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십오리, 약 6킬로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집인 엠마오로 돌아가면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일들, 즉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큰 충격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이 자신들을 구원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열 두 제자들을 포함한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굳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자 이런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소망이 사라졌고, 주님을 잃은 슬픔과 대제사장들에 대한 원망만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엠마오를 향하던 제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그들은 예수님께 기대를 했습니다.
자신들을 속량할 자, 즉 구원할 자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그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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