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성령강림절 후 일곱째 주일 어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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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는 의심을, 주님은 믿음을 구하신다.
본문: 막6:1~13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벌어진 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자란 고향이지만, 예수님은 나사렛이 아닌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일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들께서 보시는 지도는 예수님의 활동 당시의 지도인데,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고 나사렛은 남쪽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적인 생애를 주로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보내셨고, 나사렛으로는 자주 가지 않으셨습니다.
왜 예수께서는 자신의 고향을 중심으로 사역하지 않으셨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의 복음서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복음서 1절은 예수께서 고향으로 가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그러셨듯이 자신의 고향에서도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무엇을 가르치시고 어떤 기적을 베푸셨는지는 쓰여져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이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달랐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고향 사람들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에는 놀랐습니다.
하지만 가르침 자체에 놀란 것보다는 예수님이 이 일을 했다는 것에 놀라워 합니다.
그리고 곧 의심을 갖습니다.
자신들과 함께 있었던 예수가… 그런 능력을… 가질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 이상의 일이 벌어지면 의심을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그렇습니다.
제 상식 밖의 일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는 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일한 적이 없으십니다.
사람의 상식에 맞추어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우리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이 쓰여져 있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던 것도, 모세 한 명으로 출애굽을 하게 하신 것도,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이끄시고 사사를 통해 무정부 상태의 이스라엘을 지키신 것도 모두 말이 되지 않는 일들입니다.
게다가 우리 구원을 위해 성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신 것.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게 한 이 놀라운 일도,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우리의 상식에 맞추어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일을 우리의 사고와 상식 안에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이성을 뛰어넘은 사랑으로 구원을 얻었음에도 말입니다.
마치 예수님 시대 때의 나사렛의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나사렛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3절의 말씀입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희한하지요.
놀라운 말씀을 들었는데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배척을 합니다.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상식에 맞지 않고, 자신들의 본 바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예수께서는 나사렛에서 큰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5~6절의 말씀입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믿음이 없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과 기적의 상관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힘이 약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뜻도 없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있는 곳. 기적은 그 곳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나사렛에서 기적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5절의 말씀처럼 소수에게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그래도 믿는 자에게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리고 우리 교회들이 이런 소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이 세상에서는 믿음을 점점 찾아볼 수 없지만…
사람들은 하나님 보다는 재물을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만…
신앙인들은 점점 합리적이 되어가고 있고, 교회는 세상과 타협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소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니 나사렛의 소수의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상식과 이성과 합리가 아닌 믿음을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 7절 이하를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사렛을 떠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이 권능을 통해 제자들은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능은,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헛되게 만듭니다.
8절과 9절의 말씀입니다.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이는 이 세상의 것들이 하나도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하나님의 뜻이 이 모든 것을 채우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양식!!”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돈이나 옷 역시도 이 “일용할 양식” 안에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꼭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고, 그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이다”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는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할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양식도, 우리의 배낭도, 우리의 두 벌 옷도, 우리에게 필요한 돈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에게 더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내 생각대로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의구심을 갖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믿음을 보시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본문: 막6:1~13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벌어진 일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자란 고향이지만, 예수님은 나사렛이 아닌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일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들께서 보시는 지도는 예수님의 활동 당시의 지도인데,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고 나사렛은 남쪽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적인 생애를 주로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보내셨고, 나사렛으로는 자주 가지 않으셨습니다.
왜 예수께서는 자신의 고향을 중심으로 사역하지 않으셨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의 복음서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복음서 1절은 예수께서 고향으로 가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도 그러셨듯이 자신의 고향에서도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무엇을 가르치시고 어떤 기적을 베푸셨는지는 쓰여져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이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달랐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고향 사람들도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에는 놀랐습니다.
하지만 가르침 자체에 놀란 것보다는 예수님이 이 일을 했다는 것에 놀라워 합니다.
그리고 곧 의심을 갖습니다.
자신들과 함께 있었던 예수가… 그런 능력을… 가질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 이상의 일이 벌어지면 의심을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그렇습니다.
제 상식 밖의 일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는 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전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일한 적이 없으십니다.
사람의 상식에 맞추어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우리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이 쓰여져 있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던 것도, 모세 한 명으로 출애굽을 하게 하신 것도,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이끄시고 사사를 통해 무정부 상태의 이스라엘을 지키신 것도 모두 말이 되지 않는 일들입니다.
게다가 우리 구원을 위해 성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신 것.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게 한 이 놀라운 일도,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우리의 상식에 맞추어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일을 우리의 사고와 상식 안에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이성을 뛰어넘은 사랑으로 구원을 얻었음에도 말입니다.
마치 예수님 시대 때의 나사렛의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나사렛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3절의 말씀입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희한하지요.
놀라운 말씀을 들었는데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배척을 합니다.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상식에 맞지 않고, 자신들의 본 바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예수께서는 나사렛에서 큰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5~6절의 말씀입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믿음이 없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과 기적의 상관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힘이 약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뜻도 없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있는 곳. 기적은 그 곳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나사렛에서 기적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5절의 말씀처럼 소수에게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그래도 믿는 자에게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리고 우리 교회들이 이런 소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이 세상에서는 믿음을 점점 찾아볼 수 없지만…
사람들은 하나님 보다는 재물을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만…
신앙인들은 점점 합리적이 되어가고 있고, 교회는 세상과 타협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소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기적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니 나사렛의 소수의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상식과 이성과 합리가 아닌 믿음을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 7절 이하를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사렛을 떠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이 권능을 통해 제자들은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능은,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헛되게 만듭니다.
8절과 9절의 말씀입니다.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이는 이 세상의 것들이 하나도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하나님의 뜻이 이 모든 것을 채우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양식!!”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돈이나 옷 역시도 이 “일용할 양식” 안에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꼭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고, 그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이다”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는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할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양식도, 우리의 배낭도, 우리의 두 벌 옷도, 우리에게 필요한 돈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에게 더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내 생각대로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의구심을 갖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믿음을 보시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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