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우리의 왕이 오신다. 그러나 나귀를 타고(마21:1~11)-2025.11.30.대림절 첫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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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WzPJlr48HaI?si=JrkJXstYM9wZxdYl
(본문 중)
오늘의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루살렘 입성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래된 약속을 이루십니다.
선지자 스가랴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 우리들의 왕이 나귀를 타고 시온, 즉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약속을 이루십니다.
오늘의 복음서 4~5절의 말씀입니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시기 전 벳바게라는 곳에서, 두 명의 제자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십니다.
이는 스가랴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이고, 이를 위해 나귀를 타십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느끼실 지 모르지만, 저는 나귀를 타신다는 대목이 참 재미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왕이 타는 것은 나귀가 아니라 말입니다.
말 중에서도 명마를 탑니다.
이는 왕의 권위와 명예를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왕의 생명에도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전쟁에서 위기 상황에 몰린다면, 탈출하기 위해 왕은 빠르고 강한 말을 타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따로 길러지고 훈련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한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이 타는 차를 보면 어마 무시합니다.
방탄은 기본이고, 가격도 성능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얼마 전 APEC회담에서 미 트럼프 대통령이 탄 의전차량은 개발비에만 180억이 들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천황도 수 억원의 의전 차량을 타고 있고, 중국도, 우리 나라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전하고 빠르고 강한 의전 차량을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귀를 타셨습니다.
나귀는 달리기용이 아닙니다.
주로 짐을 실고 나르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무거운 짐을 나르기 위해 멍에까지도 맵니다.
예수님은 멍에를 메는 나귀, 그것도 나귀의 새끼를 타셨습니다.
어리고 연약해서 왕의 위용도, 왕의 생명도 지킬 수 없는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나귀를 타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스가랴는 왕이 나귀를 탈 것이라 예언한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하실 일, 예수님의 전쟁이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방식은 이 세상의 전쟁과 달랐습니다.
상대방의 생명을 취하기 위한 것도,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전쟁이었습니다.
자신을 내주어 십자가에 못박히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 메시아가 나귀를 탈 것이라 예언하게 하신 것이고, 예수님은 그 예언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귀 새끼 위에 사람들의 겉옷을 안장 삼아 타셨고, 생명을 내주기 위해서, 죽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셨습니다.
우리의 왕은 이렇게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어리고 약한 나귀 새끼를 타고, 사람들의 옷을 안장으로 삼은 채 우리들에게 오셨습니다.
흥분한 사람들은 자신의 겉옷을 바닥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하나님을 찬송했지만, 그들의 찬송은 스가랴의 예언에도, 예수님의 순종에도 합당하지 않는 찬송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예수님께 세상의 왕처럼 강함을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우리를 사람들 중에서 높이 세워 주시고, 세상에서의 부와 평안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아무 걱정 없이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떵떵거리며 살지는 않아도 부족하게는 살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만 그런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그런 기도를 합니다.
어서 빨리 교회가 부흥 성장해서, 좀 더 환경이 좋은 곳으로 교회를 이전하고, 생활에 걱정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성도도 수 백명이 되고, 교회에 부교역자도 많은, 영향력 있는 목회자가 되면 좋겠다고 기도합니다.
물론 대놓고 이렇게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데, 제 기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
때마다 그럴듯한 핑계와 조건들을 제시하며, 여전히 변치 않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하고 있는 저에게 전혀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은 네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네 길과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멍에를 내려놓고 내 멍에를 메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복음서처럼 겉옷을 바닥에 깔고 종려나무를 흔들며 신나게 호산나를 외치는 저에게, 어리고 힘없는 나귀를 탄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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