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견리망의, 견리사의(見利忘義, 見利思義)-2025. 4. 13. 종려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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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db0mAm6lLJg?si=iTpgZ7LtVkuwFHS9
(본문 중)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제자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이렇게 간절히 구합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1절)”
이 말은 천국의 자리를 요구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메시아로서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게 되면, 자신들의 아들들에게 높은 자리를 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22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10명의 제자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자리를 부탁한 것을 듣고는 분히 여깁니다.
혹 이 부탁으로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을까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이 마태복음 20장의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떤 메시아로 생각하고 따랐는지를 잘 나타내어 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도 화를 냈던 제자들 중 하나였습니다.
게다가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이는 유다의 이름에 붙어 있는 “가룟”이라는 말로 알 수가 있습니다.
“가룟”은 성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복음서 3절에도 나타나 있듯이 유다는 가룟인, 즉 가룟 사람 유다입니다.
여기서 가룟이라는 것은 지역도 될 수 있고, 혁명가라는 뜻도 될 수 있습니다.
가룟이라는 지명은 성경에서 확실히 나타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15장에 따르면 가룟은 유다 지파에 속한 도시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가룟이 남쪽 유대 지역에 있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쪽 유대 땅에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있었기 때문에, 독립을 꿈꾸는 혁명가들도 많이 살았습니다.
이 혁명가들은 독립을 위해 단도를 품에 가지고 다녔습니다.
이 단도를 로마어(라틴어)로 “시카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혁명가들을 “시카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다 이름 앞에 붙은 가룟(이스카리옷)은 이 시카리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즉, 유다는 다른 제자들처럼 북쪽 갈릴리가 아닌 남쪽 유대 지역에 살던 사람으로, 당시 열심당원으로 불리웠던 혁명가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로마와 부패한 정치가들과 전쟁도 벌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무너진 믿음에 사탄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넘겨주기로 합니다.
오늘의 복음서 5절에는 그들이 유다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했다고만 쓰여져 있습니다만, 마태복음 26장에서는 그 금액이 쓰여져 있습니다.
그 금액은 은 30입니다.
출애굽기 21장에서는 자신의 소가 뿔로 다른 사람의 남종이나 여종을 죽게 한 경우, 소의 주인은 은 30세겔로 노예의 값을 지불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32절).
즉, 은 30은 율법에서 정한 종들의 최소한의 목숨값인 것입니다.
유다는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은 예수님을 종처럼 팔아 이익이라도 남기려고 한 것입니다.
견리망의!!
자신의 뜻,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로움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 가룟 유다의 마음도, 그의 삶도 어두워졌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은 끝까지 가룟 유다를 사랑하십니다.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예루살렘의 한 마을로 보내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전통적으로 유월절 식사는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는 식사 자리입니다.
과거 출애굽 때에도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사람들만이 유월절의 식사 자리를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이 구원의 식사 자리를 준비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룟 유다를 포함한 12제자 모두를 참여시키셨고, 이 세상 최초의 성만찬을 베푸십니다.
예수께서 가룟 유다의 배신을 모르셨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최초의 성만찬을 베푸시며,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다(21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유다와 함께 성만찬을 하신 것은, 끝까지 유다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해를 입을 것보다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신 것입니다.
저는 가룟 유다가 자신의 자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신념, 자신의 이익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진짜 의로움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정말로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조금 전 어린이 설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신앙이라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뜻 안에 가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심지어 우리 목사들도 하나님을 자신의 뜻 안에 가두려고 합니다.
여러 성경 구절들을 차용해서 그럴 듯하게 말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것을 과연 신앙으로 볼 수 있을까요?
거룩하게 성호를 긋고, 훌륭한 말솜씨로 기도를 한다고 해서 의로운 것은 아닌 것입니다.
진짜 의로움은 눈 앞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뜻, 내 생각, 내 신념보다 주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
그것이 바로 참 신앙이고, 참 의로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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