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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우리의 기쁨은 하늘에 있습니다(눅10:1~20)-2025. 7. 6. 성령강림일 후 넷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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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임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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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pBOW9ExaAow?si=jLRnNEECkIvDy8X1


(본문 중)


70명의 파송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거의 마지막 시점입니다.

곧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실 것이고, 그 곳에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 중 70명을 선발해서 자신이 하셨던 일,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보내는 예수님의 마음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곧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고, 더 이상 제자들과 함께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지만, 동시에 걱정하십니다.

앞으로 제자들 앞에는 험난하고 어려운 길, 수많은 유혹과 핍박이 놓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쫓겨나고, 때로는 두들겨 맞기도 하고, 때로는 목숨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뿐 만이 아닙니다.

사탄은 제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괴롭힐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할 것이고, 제자의 길을 포기하게 만들 것입니다.

때로는 핍박하고, 때로는 속이고, 부요하게도 했다가, 실수하게도 했다가, 교만하게도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든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질 수 있도록, 숨 쉴 새 없이 육적으로 영적으로 들이 닥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교묘하게 제자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제자들이 겪게 될 상황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게 하고 파송 하십니다.

참 신기하지요.

제자들을 위해서라면 여비도 넉넉히 채워주고, 사람들에게 외면당했을 때를 대비해서 이것저것 챙겨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

왜냐하면,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없어야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뭔가 기댈 것이 있다면, 내 호주머니가 차 있다면, 하나님 보다 그것 들에게 기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들에게 기대는 순간, 제자들은 이 파송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게 하고, 이리 떼 한 가운데로 보내신 것입니다.

 

아무리 전신갑주를 입어도 어린 양은 어린 양입니다.

이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싸우신다면, 어린 양이 아니라 더 연약하고 작은 동물이라도 이리를 이길 수 있습니다.

사자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봐야 이길 수 있다는 것.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

예수님은 이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하나님의 나라와 달랐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하나님의 나라는 육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육적인 힘과 권세로 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세의 시대처럼, 또 다윗의 시대처럼 자신들을 부강하게 하고 로마를 비롯한 강대국을 물리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이스라엘을 모든 나라 위에 있는 나라, 다스리는 나라가 되게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파송을 받은 70명의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돌아왔을 때 어떻게 보고합니까?

17절의 말씀입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70명의 제자들은 귀신들이 자신들에게 항복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신호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귀신들도 항복했으니, 이제 여러 나라들도 자신들에게 항복할 것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항복에 중점을 맞추지 않으셨습니다.

항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전해졌고, 그 중심에 너희 제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20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행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 앞으로 제자들이 전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육적인 것이 아닙니다.

아니, 육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마지막이 오기 전, 제자들을 각 마을로 보내 자신이 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게 하셨고, 빈 손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나라가 육적인 것에 있었다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신 갑주를 입히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그것으로 각 마을에서 병사들을 뽑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육적인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게 하셨습니다.

각 마을이 평안할 수 있도록, 전쟁 준비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 교회는 이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육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교회는 사람들을 항복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로 인도하는 곳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또 성도들이 너무나도 쉽게 이런 진리를 잊어 버립니다.

크고 좋은 건물을 세우고, 교회의 세를 모아 덩치를 불립니다.

정치에 참여해서 큰 소리를 내기를 원하고, 큰 교회가 되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길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하나님의 축복을 말합니다.

하나님 믿으면 복 받고, 잘 되고, 형통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말에 아멘하고 그 축복이 나에게도 임하길 기도합니다.

마치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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