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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미워하지도 말고 분노하지도 말고(눅9:51~62)-2025.6.29.성령강림절 후 셋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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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임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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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mb4ejiAndGI?si=Q7FdXJyWi1YH_gKh


(본문 중)


과거 솔로몬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은 반으로 나뉘었습니다.

남쪽은 유다라는 나라가 되었고, 북쪽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전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갈등은 점점 쌓여져 갔고, 서로 적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엘리야가 활동하기 전, 오므리라는 왕이 북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을 때,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망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라는 나라에게 망했고, 남유다는 바벨론이라는 나라에게 망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여러 민족을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 안으로 불러 들여서, 같이 살게 했습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없애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마리아는 여러 민족과 혼합되어 살며 서로 결혼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족의 혈통이 섞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택 받은 민족은 아브라함의 자손들 뿐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유대인들이 볼 때, 혼혈이 된 사마리아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을 때, 사마리아인들이 함께 짓자고 했으나, 남유다 사람들은 거절했습니다.

다른 민족과 성전을 같이 지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땅 그리심이라는 산에 성전을 세웁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유대인들도 그리심 성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2개의 성전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런 갈등은 계속되었고, 한 때 남유다 사람들이 독립을 하고 힘을 크게 얻었을 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그리심 산으로 쳐들어가서 성전을 부숩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말은 절대로 곱게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혈통을 부정하고, 함께 성전 짓는 것을 거절하고, 자신들의 성전을 부순 유대인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일행이 자신들의 마을에 머무르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일행들의 입장에서는 너무한 일이었습니다.

이미 과거의 일이고, 세대가 바뀌었습니다.

게다가 사마리아든 유대든 로마를 등에 업은 헤롯에 의해 정복당했습니다.

예수님 시대 때에는 둘 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룻밤 머무는 것조차 반대를 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의 우월의식, 선민의식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사마리아인들은 자녀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신들에게 정복당했던 나라 아닙니까!!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십니까?(54)”

 

여러분, 어떠세요?

이들의 갈등이 조금은 이해가 되시지요?

그런 반면에 또 이런 갈등을 대를 이어 나가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상 그들과는 별 상관없는 일입니다.

조상들의 일이고, 또 조상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조상들의 감정과 싸움이 대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을에 묵지도 못하게 하고, 또 묵지 못하게 한다고 불을 내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 쓸데없는 케케묵은 감정 싸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예수께서 다른 마을로 가는 것으로 이 일을 일단락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성경 사본을 보면 예수께서 다른 마을로 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이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면서 골백번도 더 들었던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나 화가 난 제자들은 이 말씀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저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그들을 심판해야 하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옳은 것이고,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미움은, 그리고 분노는 정말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무엇이 자신의 본분인지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저 갈등 속에서 상대방을 반대하고, 심판하는 것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결사각오를 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데,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하룻밤 묵을 곳을 내어주지 않는 것도, 또 그런 곳을 불로 심판해야 한다는 것도 모두 이 미움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미움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있어요.

우리의 회사나 학교에서, 또 교회와 가정에서 이 미움으로 인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방해가 또 심판이 옳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나십니다.

갈등이 있는 곳, 미움이 있는 곳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이런 감정들을 지나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갈등으로 인해 정작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불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던 요한이 베드로와 함께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길 간절히 기도하는 장면이 쓰여져 있습니다.

만일 요한이 예수께 요구했던 대로 심판의 불을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겠지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요한의 요구를 들어 주시지 않고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한의 기도대로 다른 불, 성령의 불을 내려 주십니다.

이로 인해, 요한도 또 사마리아도 복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갈등이 지나가면 더 중요한 것이 보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의 마음으로 미워하지도 분노하지도 맙시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더 중요한 것으로 우리들을 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대합시다.

더 중요한 것을 기대하고 인내하는 우리를 통해 성령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의 미움과 분노를 몰아내어 주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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