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요8:48~59)-2025.6.15.성삼위일체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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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F-bjN6vvn6M?si=9EHxITcvyqnUO03t
(본문 중)
오늘은 성삼위일체주일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예수님의 생애와 구원 사역을 중심으로 매주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대림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과 같이 예수님과 관련된 절기를 중심으로 주일 예배가 구성됩니다.
이것은 교회의 전통으로 과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부터 만들어져 온 것입니다.
그리고 중세시대에 이르러서는 예수님의 생애와 구원 사역을 중심으로 한 주일 뿐만 아니라 여러 축일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재의 수요일, 성주간 축일, 성인들의 축일, 그리고 오늘 우리가 지키는 성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교회가 중심이었던 서방 국가와 일부 아프리카의 국가들에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교회력, 교회 달력이 생기게 되었고, 그 국가에 속한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교회력를 중심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난 뒤, 많은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교회력에도 개혁으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성공회나 우리 루터교회와 같이 예배의 전통을 계승한 교회는 성경 기록과 관련 없는 축일을 제외하고는 교회력의 대부분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청교도나 재세례파, 스코트랜드의 개혁파 같은 교회들은 교회력을 없앴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넘어갔고, 자신들의 환경과 맞추어 새로운 교회력를 만들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추수감사절, 어버이 주일, 어린이 주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나라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친 선교사들이 대부분 미국 선교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개신교에서는 우리 루터교회를 제외하고 교회력을 지키는 교회를 찾아보기가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신학이 발달하고 여러 나라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목회자들이 많아지자, 몇 몇 교단들은 교회력을 함께 정하고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장로교 통합측을 중심으로 감리교회, 일부 기독교 장로교회 등이 교회력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전통적으로 교회력을 지키던 교회안으로도 미국 환경에 맞추어진 절기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루터교회에서도 추수감사절, 어버이 주일, 어린이 주일을 지키는 교회가 많아졌습니다.
참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성삼위일체 주일을 설명하고자 했는데, 교회력 설명이 되었네요. ^^
여하튼 성삼위일체 주일은 예수님의 생애와 구원 사역에 중심이 맞춰져 있는 축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축일을 지키는 이유는 성삼위일체를 통해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오순절에 강림하심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을 이끌고 계신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람들을 위해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은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 “보내셨다”라는 것이 누가 우위에 있고 밑에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1등, 예수님이 2등, 성령님이 3등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의 복음서 54절의 말씀처럼,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 안에도 예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이 세 분의 하나님은 늘 함께 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부께서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성령강림주일의 다음 주일인 오늘을 성삼위일체 주일로 지킵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함께 일하셨다는 것을 믿고 확신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서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당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이 자신과 항상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거부하지요.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복음서 48절의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사마리아 사람이다, 귀신이 들렸다고 조롱합니다.
이 말은 예수 당신이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또 귀신이 들린 사람처럼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어요.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을 때, 혈통의 문제로 성전 재건에서 제외되었고, 그것이 사마리아 사람들 마음 속에는 상처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지역인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지었고, 그리심 산 성전이 하나님이 오시는 진짜 성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조롱했고, 이런 거짓말쟁이의 이미지는 예수님의 시대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향해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한 것은 거짓말쟁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모욕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귀신이 들렸다는 말도 마찬가지지요.
귀신이 거짓을 말한다는 것은 당시 모두가 알던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실을 말했지만, 사람들은 거짓말로 여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조롱 가운데서도 그냥 물러서시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이 귀신들린 것이 아님을, 자신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지킨다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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