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요일 어른설교)끝이 아닌 시작(요19:17~30)-2025. 4. 18. 성금요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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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3dy3l-TUF78?si=vD5MjWk0oVdPLJ1C
(본문 중)
사람만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지요?
이 땅에 생명이 있는 모든 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에게도 식물에게도 모두 끝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다면, 우리의 공간과 시간 안에 살고 있다면 모두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공간과 시간 안에 사는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도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불쌍했고, 참혹했고, 고독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던 제자에게 배신을 당했고, 자신을 응원했던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저주를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한 때 베드로도, 도마도 예수님과 최후를 같이 하겠다고 했지만, 허울 좋은 말 뿐이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떠났고, 예수님의 곁을 지키는 자들은 아무런 힘이 없는 여자들과 나이 어린 제자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죽음은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명성도, 우정도, 사랑도 빼앗아가고, 사람을 철저하게 혼자로 만듭니다.
무엇도 이 죽음을 피하거나 대항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자연적인 일로 치부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 볼만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는 이 죽음이 가진 힘이 다시 한 번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힘은 끝내 하나님의 아들을 삼켜 버립니다.
죽음 앞의 예수님은 대제사장들의 조롱을 받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속옷까지도 벗겨 가져 갔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조롱과 치욕은 오롯이 예수님의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예수님을 죽음에서 구원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죽음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죽음은 어떨까요?
우리들의 죽음은 예수님과 다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처럼 조롱과 치욕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도망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도, 죽음이 가지고 있는 고독과 절망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중국의 황제였던 진시황은 불로불사를 위해 평생 불로초를 찾았고, 수은이 장수에 좋다고 믿어 수은을 복용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도 불멸의 땅을 찾기 위해 동방 원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과거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런 일들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레이 커즈와일이라는 미국의 미래학자는 2045년이 되면 기술의 발달로 인류가 영생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2045년까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1년에 약 11억원을 투자해 자신의 건강을 살피고 있다고 합니다.
드미트리 이츠코프라는 러시아의 사업가는 영화 아바타처럼 미래에는 인간의 정신을 다른 대상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옮기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뿐 아니라 영생을 위해 스스로 냉동인간이 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과연 이들의 주장처럼 죽음을 피하는 것이 가능해질까요?
글쎄요. 언젠가 기술이 천문학적으로 발달되면 그렇게 되는 날도 올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날이 언제 올지 우리는 알 수 없고, 또 그렇게 산다고 해도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반드시 죽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육체는 죽을 것이고, 사람은 흙으로 돌아갈 것(욥34:15)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의 섭리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육체는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죽음은 다른 이들의 죽음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죽음 이후의 삶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죽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으로부터 파생되는 고독과 절망을 겪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20절).
이에 대해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며, 사망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한다. 그러나 그분이 살아 계시므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이것이 오늘 성금요일이 말해주는 두 번째 가르침입니다.
새로운 생명이 약속된 죽음.
우리 성도들이 맞이할 죽음은 그저 죽는 것이 아닌 새 생명을 위한 죽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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