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잃은 것에 대한 고찰(눅15:1~10)-2025.9.14.성령강림일 후 열넷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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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ITZ9WP7TskI?si=K2nN7j5NS1zyas93
(본문 중)
오늘의 복음서에 등장하는 죄인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죄인이라는 범위가 하도 커서 진짜 범죄를 저지른 죄인들도 죄인의 범주 안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죄인은 흔히 율법에서 벗어난 자,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당시 생활고에 시달린 사람들은 율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양치기입니다.
양치기를 하는 사람들은 양을 데리고 목초지를 찾아 떠나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율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양치기라는 직업을 피했지만, 생활고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양치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양치기는 죄인의 범주 안에 들어갔습니다.
이외에도 천한 직업으로 분류되던 직업이 있었습니다.
낙타·당나귀몰이꾼, 마부, 뱃사공, 푸줏간 주인, 대장장이, 창기들이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피를 만지거나, 거룩하지 못한 일을 하거나, 먹고 살기 위해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직업이었기에 죄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환경이 좋지 않은 것이었지만, 율법은 그들을 죄인이라고 명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죄인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을까요?
있었습니다.
하는 일을 관두고 율법을 지키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먹고 살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이들과 함께 어울리셨습니다.
그들의 환경을 아셨고, 그들의 아픔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만을 최선이라 여겼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율법대로 행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비난했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을 보고 수군거렸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잃은 양의 비유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관점이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양 주인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섭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이 들에 있었지만, 양 주인의 머리 속은 잃은 양 한 마리로 가득합니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도 주인의 것이지만, 잃은 양도 주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길을 잃었다고 해서 내 양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마치 우리 둘째가 고집 피우면서 친구네 집에 놀러가 길을 잃었다고 해서, 내 아들이 아닌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양을 찾기 위해, 양 주인은 양을 찾을 때까지 들판을 헤맵니다.
그리고 찾은 후에는 그 누구보다 기뻐합니다.
친구와 이웃을 불러 모아 함께 기쁨을 나눌 정도로 기뻐합니다.
자신의 양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양의 비유를 말씀하신 뒤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7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여기서 죄인 한 사람은 누구고, 의인 아흔아홉은 누구일까요?
죄인 한 사람은 환경 때문에 어쩔 수없이 율법을 어기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의인 아흔아홉은 자칭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것입니다.
“보아라, 율법대로 사는 너희들은 회개할 것이 없어 내가 필요치 않겠지만, 율법대로 살지 못해 너희가 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회개할 것이 있기에 내가 필요하다. 그러니 나로 인해 회개하는 사람들로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
예수께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이유.
그것은 그들에게 율법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직업을 바꾸는 것도, 그들의 환경을 바꾸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 회개하는 것.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 이유입니다.
여러분, 잘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말하는 회개와 예수님이 말하는 회개는 절대로 같을 수가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회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예수님의 회개는 예수님 자신을 따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구원은 율법에 있고, 예수님의 구원은 복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직업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어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자신을 믿고 회개하면 구원이 있을 것이라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로 인해 하늘에서 기뻐할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다음 비유에 나오는 잃은 드라크마 비유도 이와 마찬가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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