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버려야 보이기 시작합니다(요1:29~42)-2026.1.25.주현절 후 셋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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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J8mGokPR14g?si=oZ5GSqZp2_ngxGYx
(본문 중)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신 예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서 두 형제와 만나십니다.
그 형제의 이름은 베드로와 안드레입니다.
이들은 어부였고, 생업을 위해 갈릴리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시던 예수께서는 그들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을 낚는 어부” 참 멋있는 부르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주저할 수밖에 없는 부르심입니다.
평생 해오던 생업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베드로는 결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가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형제 중 누구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물을 버려두고,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 다음 말씀은 더더욱 저를 절망하게 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를 데리고 가시던 예수께서는 곧 야고보와 요한을 보십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업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물을 깁는 것은 하루의 일과가 끝났다는 것을 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고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그물을 깁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예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 부름에 야고보와 요한은 곧장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물을 깁는 것을 그만 두고, 타고 있던 배에서 내려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 뿐만이 아니지요?
그들은 아버지까지도 함께 배에 남겨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어떤 사람들은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 세베대가 배를 가진 선주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야고보와 요한이 아니더라도, 선주를 도울 하인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실재로 마가복음 1장 20절에도 이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마가복음에서는 품꾼들이 세배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나옵니다.
막1: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저도 베드로와 안드레 보다 야고보와 요한의 형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과 형편의 문제는 별개의 것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업을 대대로 이어서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목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목수의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가업을 이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름에 이들은 즉각 나섭니다.
가업을 버린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저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저도 네 자녀의 아버지인지라,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
네 인생이니 네 앞길은 네가 알아서 해라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서운하고 섭섭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래에는 가업을 잇는 사람도 많이 없고, 저도 가업을 잇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 동생이 아버지가 하셨던 일을 따라 해양대에 들어갔을 때, 저는 평소 감정 표현이 없었던 아버지가 많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화 통화를 하다가도 동생 이야기가 나오면 자랑하셨고, 동생이 해대 제복을 입고 집에 오면 매우 흐뭇해 하셨습니다.
물론 그 일이 고된 일이기에 걱정도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많이 기뻐하셨던 것도 사실입니다.
기뻐하시고 흐뭇해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렇듯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아버지로서 기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은 그 길을 가지 않습니다.
가업을 버리고, 아버지를 배에 둔 채로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고 더욱 더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세례 요한에 이어, 이제는 제자들까지!!
왜 하나님은 그들의 형편을 살피지 않으시는가?
왜 예수님은 가정과 가업이 있는 그들을 부르셨는가?
참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입니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한참을 묵상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너무 독선적이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제가 이해하기에는 참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기도하고, 몇 번이고 다시 말씀을 읽으면서,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 이 말씀을 기록하셨는지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23절 이하를 읽었을 때…
저는 비로소 이 말씀을 주신 주님의 의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복음서 23절 이하의 말씀에서는 놀라운 복음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활동하시자, 천국 복음이 전파됩니다.
모든 병과 약한 것들이 고쳐집니다.
병으로 고통 받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환자, 중풍병자들이 고침을 받습니다.
이 소문은 곧 이방 땅까지도 퍼집니다.
수리아와 데가볼리에서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께로 나아옵니다.
이스라엘 전역에도 이 소문이 퍼집니다.
갈릴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요단강 건너편, 즉 베레아와 세례 요한이 잡혀 있는 마케루스 성 근방에서도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옵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각종 병과 귀신에 사로 잡힌 자들에게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활동을 통해 잠시나마 천국이 이 땅에 임한 것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냐면, 역사서도 이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깐 다시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를 읽어보겠습니다.
(읽은 후) 이 놀라운 일이 이 땅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이 땅의 생각을 버린 자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그들에게 보여졌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잡혀갔다고 생각했던 세례 요한을 통해…
생업을 버리고 사람을 낚으러 간 베드로와 안드레를 통해…
가업과 아버지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야고보와 요한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이 이 땅에 임했고, 그들은 구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다면, 자신의 생업과 가업만을 원했다면…
그들은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구원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뜻을 따른 그들의 결심과 도전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어떻게 임하는지 깨닫게 하였습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의 안위와 평안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잘되고, 걱정과 괴롬 없이 사는 것이, 복이 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꼭 이런 삶을 복이 있다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 부름에 따르는 것이 복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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