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혼례잔치에서 시작된 복음(요2:1~11)-2025.1.19.주현일 후 둘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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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46s4Ue6WiqQ?si=ho6tho4a0gV5luHH
(본문 중)
본문의 배경은 혼례 잔치입니다.
그리고 성경 가운데서 결혼은 하나님과 택하신 백성의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에, 이를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 복음의 출발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기적이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의 믿음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믿음에 중점을 둘 수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하인들의 순종으로 기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순종에 중점을 둘 수도 있습니다.
정결 예식에 사용되는 물이 포도주가 되었기 때문에 죄사함의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연회장이 변화된 포도주를 맛보고 좋은 포도주라고 칭찬했기 때문에 기존의 정결 예식이 변했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참 다양한 설교를 할 수 있는 것이 오늘의 복음서인 것입니다.
이런 복음서 앞에서 저는 무엇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우리 교회에 필요한 말씀일까,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전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던 중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눈이 갔습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단 세 마디를 하셨습니다.
4절과 7절과 8절의 말씀입니다.
먼저 4절입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당시의 유대 문화에서는 가능한 표현일지 모르나, 우리 한국 문화에서는 위화감이 드는 표현입니다.
물론 이 “여자여”라는 말에 대한 여러 해석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메시아로서 객관적으로 말씀하셨다는 해석도 있고, “여자여”라는 말이 여성에게 지칭하는 최고의 존대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또한 헤롯의 동생 페로라스가 자신의 아내에게 “여인이여”라고 칭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해석도 우리의 의구심을 시원하게 해소시키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 말씀은 예수님의 완곡한 거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은 “안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예수님의 첫 표적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되었습니다.
이 기적을 통해 공생애가 시작된 것입니다.
분명히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타의로 인해 메시아로서의 생애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복음서의 의도가 의외로 심플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바꾸신 것입니다.
결혼 잔치를 통해 새 출발하는 부부를 위해서, 또 마리아의 믿음에 의해서, 하인들의 순종에 의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때를 바꾸셨습니다.
이러한 섭리의 변화, 뜻을 돌이키시는 장면은 구약 성경에서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광야에서 있었던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오르고, 시간이 많이 지체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이에 하나님은 백성들을 버리시려고 하셨으나, 모세의 간곡한 만류로 마음을 돌이키십니다.
호세아 14장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징계를 돌이키십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자, 하나님은 사울을 향한 자신의 계획을 바꾸시고 사무엘을 통해 새로운 왕을 찾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의 복음서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때를 바꾸신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이 너무 완고하고 완강하며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것이 있으면 그대로 행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우리를 하나님에 뜻에 따르게 하신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보는 것이고, 우리의 죄성이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자신의 뜻을 돌이키시고, 바꾸시는 분입니다.
그것이 오늘의 복음서에 얼마나 잘 나타나 있습니까!!
어떻게 보면 결혼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일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한 일이지만, 적어도 제 생각으로는 공생애의 때를 바꿀 만큼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은 이를 위해 자신의 때를 바꾸셨습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떤 부부의 새 출발을 축복하기 위해, 자신의 때를 바꾸시고 메시아로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말하고 있는 복음의 시작된 계기였습니다.
정말 예수님 다운 시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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