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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예수님의 죽음이 준비되다(요12:1~19)-2026.3.30. 성주간 월요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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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임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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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5xEXY89vsUM?si=DHx8nF2G5BS0-G5P


(본문 중)


오늘의 복음서에는 이 나드가 지극히 비싼 향유라고 쓰여져 있고, 그 값어치를 삼백 데나리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1년치 임금이라고 합니다.

참 비싼 향유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이 비싼 향유를 아끼지 않습니다.

향유가 담긴 옥합을 깨뜨려 모두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습니다.

이는 자신의 오빠를 되살려주신 예수님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감사의 표현은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부활에 대한 감사가 죽음 준비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부활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예수님의 죽음과 맞바꾼 것입니다.

참으로 고귀한 생명입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죽고 싶다고 말합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자조하기도 합니다.

너무나 힘들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이런 말을 하기 전에 우리의 생명이 누구로부터 왔는지 깊게 생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명은 예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맞바꾼 귀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에 대해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귀한 것이기에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니 힘든 일 앞에서 죽고 싶다고 말하지 마시고, “도와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생명의 가치를 알고 도움을 구하는 여러분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실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오빠를 살려주신 예수님께 감사하여 그 발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리아의 일은 가룟 유다로 인해 곧 폄하가 됩니다.

가룟 유다는 말합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어떻게 보면, 가룟 유다의 말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노동자 1년치 임금이라는 돈은 절대로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 돈이라면 수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모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오늘의 복음서에서는 가룟 유다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쨌든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 해 보입니다.

 

우리는 이런 그럴 듯한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교회에 드리는 헌금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면 어땠을까?

교회가 하는 행사들을 줄이고 그것으로 이웃을 돕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유혹과 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웃을 돕는 것이 교회에 있어서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이 균형 잡히려면, 우리는 두 가지의 일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이웃을 향해서만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이웃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균형 잡힌 신앙이고, 바른 재정 사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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