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하나님이 일하시니(요9:1~7. 13~17. 35~41)-2026.3.15.사순절 넷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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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JcrEEmgM7MU?si=z0CsfdLAbzuj7vWn
(본문 중)
여러분, 몸이 아프면 마음이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아프면 믿음도 어그러질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육간에 강건하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쓰여져 있는 것도 이와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육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의 복음서를 보게 되면, 오늘의 복음서에 등장하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마음 상태나 신앙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자책을 했을지, 얼마나 죄에 묶여 있었을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2절에 쓰여 있듯이 당시 유대인들은 병이나 장애를 죄로 인한 하나님의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민수기 14장 18절에서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는 말씀이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누군가의 고난이나 실패, 아픔 등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갖습니까?
“어떤 죄를 지었길래 저렇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 고난이나 아픔 속에서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합니까?
저처럼 “내가 뭐 잘못한 것이 있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죄”라는 잣대를 들이 밀면서 살고 있습니다.
고난을 보면 그 가운데서 먼저 죄의 원인을 찾고, 누구의 책임인지 찾으려 하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않으십니다.
물론 죄와 고난이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죄로 인해 고난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특정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고난이 죄로부터 온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내 이웃의 고난에 죄를 들이밀어도 안 됩니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과 화가, 내 아픔과 실패가 내 죄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3절)”
이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대답을 통해서, 고난에 대한 관점을 정죄가 아닌 하나님의 일로 돌리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맹인이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으로 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맹인이 당하는 고난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은 맹인이 당하는 현실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을 미화 하지도, 고난을 기적을 위한 도구로 여기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관점을 바꾸신 것입니다.
장애가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 고난이 반드시 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고난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예수님은 이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장애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일을 찾으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장애와 고난은 죄와 절망이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 장애와 고난은 구원이고 믿음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고난 받는 자들의 아버지이시고, 그들을 외면치 않으시고, 복 주시고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곧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드시고, 그 진흙을 맹인의 눈에 바르십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직접 몸을 굽혀 진흙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 진흙을 맹인에 눈에 바르십니다.
이 장면에서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창세기에서 사람이 어떻게 지음 받았는지가 떠올랐습니다.
창세기 2장 6~7절의 말씀입니다.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 안개로 적셔진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것처럼, 예수님은 침으로 적셔진 흙으로 맹인의 눈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요한복음의 저자는 너무나 친절하게도 이 실로암의 뜻이 무엇인지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예수께서는 맹인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고 실로암 못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맹인은 그 실로암 못에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다고 7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이, 이제는 보게 되었습니다.
고난과 절망 가운데 있던 사람이, 이제는 밝음 가운데 빛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보지 못했던 과거는 끝이 났습니다.
죄와 자책에 사로잡혔던 옛 사람은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어둠이 빛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정죄가 구원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맹인을 사로잡고 있던 모든 것이 끊어진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난 가운데 함께 계시고 위로하시고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구원한 이들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알리고, 누가 진짜 맹인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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