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옛 것은 옛 것으로 새것은 새 것으로(마9:14~17)-2025.1.1.신년예배설교
작성자 정보
- 담임목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2,446 조회
- 목록
본문
설교영상 https://youtu.be/lsDb3MUjy7c?si=yHx4C5SWKZ0j4JDX
(본문 중)
지난 주 주일, 예배 후 저는 참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무안에서 항공기 사고가 있었습니다.
179명이 사망했고, 단 2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어수선한 정국에 참담한 사고까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전, 작년 1월 1일, 제가 아직 일본에 있었을 때,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372명의 사망자가 있었고, 1500명이 넘는 사람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재로, 자연재해, 또 전쟁과 병으로 사고를 당하고,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지켜 주시기를, 더 이상의 사고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새 날을 맞이했습니다.
어지럽고 혼란한 가운데 맞이하는 새 날입니다.
올 한 해는 모든 이들이 은혜 가운데, 주님의 보호 아래 건강하고 행복한 새 날이 되길 바라고 기대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서의 말씀은 “새로운 것”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금식 논쟁”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금식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불경건함을 지적합니다.
어찌해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1년에 두 번 금식했습니다.
한 번은 대속죄일에 했고, 다른 한 번은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당한 날에 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이런 공식적인 금식일에는 금식을 했겠지요?
그러나 열심이 있는 유대인들은 자신의 공덕을 쌓기 위해 더 많은 금식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2절에 따르면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7장 33절에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아 세례 요한 역시도 자주 금식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전파했던 회개의 특성상, 금식을 가까이 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자주 금식했고, 금식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불경건을 따지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은 금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랑 되신 예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식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 즉 예수께서 죽임 당하실 날, 그 날에 제자들은 금식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과 세례 요한의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금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경건을 위해 금식을 해야 한다”와 “지금은 금식을 할 필요가 없다”라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금식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예수님 시대에는 구약 성경 밖에 없었기 때문에, 구약 성경을 토대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구약 성경에서의 대표적인 금식일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대속죄일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큰 일이 있을 때(삿20:26, 대하20:3)나 위대한 지도자가 죽었을 때(삼상31:13), 그리고 백성들의 회개가 필요할 때(삼상7:6) 금식하였습니다.
정해진 금식일은 대속죄일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대부분이 단발성 금식이었습니다.
오히려 선지자 이사야는 금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58장 4절과 6절에서 이렇게 예언합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4절)”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6절)”
이러한 말씀이 있었기에 예수께서는 지금은 금식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과거에도, 예수님의 시대에도 금식이 바르게 사용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식할 날이 올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자가 죽었을 때 금식했던 것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제자들은 금식할 것입니다.
전통에 따라, 공덕을 쌓기 위해 금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들의 한다고 해서 할 필요도 없고, 자신의 경건을 자랑하기 위해 금식할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과거 루터의 시대에서도 금식이 경건의 척도가 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순절과 대림절, 그리고 매주 금요일마다 금식을 했었습니다.
수도원에서는 더 많은 금식을 했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금식을 자랑할 때가 있었지요?
그래서 어떤 이는 예수님처럼 40일 금식을 하고, 어떤 이는 20일, 어떤 이는 10일, 어떤 이는 일주일을 금식했습니다.
그리고 수척한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이며, 이를 자신의 영적인 척도로 삼아 자랑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금식할 때는 외식하는 자들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식한다고 해서 수척한 얼굴을 보이는 것, 금식을 자신의 영적인 척도로 삼는 것.
이러한 것은 과거의 유산일 뿐이고, 자신의 자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시작하는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는 것들입니다.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