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성령강림주일 어른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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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께서 하시는 일
본문: 요16:7~15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미지라는 것은 큰 위치를 차지합니다.
사람의 이미지, 교회의 이미지, 동네의 이미지, 가게의 이미지, 병원의 이미지 등 우리는 대부분의 기억을 이미지화 시키고, 그 이미지로 기억에 저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가급적 변하지 않지요.
대부분 고정된 이미지로 우리의 머리 속에 박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11년을 일본에서 살았고, 수 년을 외지에서 살았지만, 아직도 집이라고 하면 제가 어렸을 적부터 살았던 구의동 집이 떠오릅니다.
구의동 집이 이미지화 되어서 제 기억에 박혔기 때문이겠지요.
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루터교단에서 났고 자랐기 때문에, 많은 교회의 사람들은 곧 50이 되는 저를 아직도 어린 아이로 생각합니다.
물론 장점도 있어요.
일을 잘 못하거나 실수해도 많은 분들은 그려려니 해 주시고, 조금만 잘하면 눈에 확 띕니다.
이렇듯 한 번 고정된 이미지는 잘 변하지가 않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종교, 기독교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성령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대부분 불 같은 이미지, 방언과 예언과 같은 신비한 현상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께서 이 땅에 임하셨을 때의 현상들이 우리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파의 교회들, 대표적으로 순복음 교회와 같은 교회들이 이를 강조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성령이라고 하면 불, 예언, 방언 등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적과 같은 일들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의 전부일까요?
그렇지는 않지요.
성령의 역할은 신비한 일을 행하게 하거나 일으키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성령께서 하시는 일들이 가려지는 경향도 없지 않습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이 성령의 역할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때가 가까이 오자 제자들을 부르시고 성령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보내고, 예수님 없는 시대를,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기 위해 예수님은 성령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 7절과 8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가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유익의 이유를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떠나가고 성령께서 오시는 것.
이것이 어떻게 제자들에게 유익이 될 수 있을까요?
성령님이 오시면 제자들이 기적과 같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성령님의 힘과 능력이 예수님을 능가해서 일까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때도 제자들은 기적을 일으켰고, 예수님도 성령님과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 보냄을 받은 제자들에게 권능이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는 능력과 힘의 근원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과 기적의 일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자신이 떠나가고 성령께서 오시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떠나감과 성령의 오심 사이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오시는 성령은 이것, 예수님의 모든 구속 사역을 제자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의 말씀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떠나가시고 성령께서 오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실상 유익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시는 성령은 이를 위해 제자들과 늘 함께 계실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에 보면 성령의 이름 같은 것이 쓰여져 있습니다.
뭐라고 쓰여져 있나요?
보혜사 성령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처럼 성령님에게도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여호와=스스로 있는 자, 그리스도=구원자
그러면 보혜사는 무엇일까요?
보혜사는 파라클레토스라고 해서,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곁에 있도록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제자들 곁에 늘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유럽인이든 어느 사람이든 상관없이,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 구원 사역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오신 이유, 그것은 기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계속해서 예수께서는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역시도 예수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죄라고 하는 것은 범법과 관계가 있습니다.
법을 어기면 그것을 죄라고 하지요.
저는 여기 계신 몇 분들과 함께 엊그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경복궁도 가고 남산도 갔었는데, 우리는 서울에서 셀 수도 없는 빌딩과 아파트, 수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 수 많은 것들이 유지되고 평화롭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법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법이 모든 것을 정당하게 가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법이 있기 때문에 그 수 많은 것들이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법을 세운 것이고, 모두가 그 법을 따르게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백성을 위해, 또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법이었고,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박해했고,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는 법을 따르지 않은 것, 죄에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죄는 일반적인 사회나 공동체에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을 믿지 않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 이것이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의에 대한 것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께로 가셨습니다.
당시의 유대 사회에서 하나님께로 갔다는 것은 의롭다, 바르다, 옳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공의이시고, 모든 바름은 하나님께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께로 가심으로 자신이 옳았음을, 자신의 구원 사역과 관계된 모든 것이 바른 것임을 나타내십니다.
윤리적인 의, 도덕적인 의, 공공의 의가 바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바르시고, 하나님에게로 가신 예수님의 모든 구원 사역이 바른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의, 우리가 생각하는 공적인 의와 다른 점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될 것입니다.
윤리나 도덕, 공동체가 기준이 아니라 예수님이 기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의롭다 함을 얻을 것이고,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반대했던 이 세상의 임금.
사단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미혹하고,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 따르게 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한 사단은 예수님의 의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보혜사로서 제자들의 곁에서 예수님의 구원을 깨닫게 하고, 예수님의 의로 세상을 심판하는 일.
성령께서는 이 기준을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 13절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께서는 제자들을 진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장래 일도 알려주십니다.
여기서 장래의 일이라는 것은 개인의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개인의 유익을 위해 점을 치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죽음과 부활까지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자는 부활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는 구원이 주어질 것이고, 이 세상은, 사단의 모든 권세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복음서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계신 여러분.
이 세상에서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위해 이 땅에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우리 곁에서 계속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세상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상의 정욕과 자랑을 따르지 않도록,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장래의 일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단의 권세를 심판하시고, 세상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켜 면류관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요16:7~15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미지라는 것은 큰 위치를 차지합니다.
사람의 이미지, 교회의 이미지, 동네의 이미지, 가게의 이미지, 병원의 이미지 등 우리는 대부분의 기억을 이미지화 시키고, 그 이미지로 기억에 저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는 가급적 변하지 않지요.
대부분 고정된 이미지로 우리의 머리 속에 박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11년을 일본에서 살았고, 수 년을 외지에서 살았지만, 아직도 집이라고 하면 제가 어렸을 적부터 살았던 구의동 집이 떠오릅니다.
구의동 집이 이미지화 되어서 제 기억에 박혔기 때문이겠지요.
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 루터교단에서 났고 자랐기 때문에, 많은 교회의 사람들은 곧 50이 되는 저를 아직도 어린 아이로 생각합니다.
물론 장점도 있어요.
일을 잘 못하거나 실수해도 많은 분들은 그려려니 해 주시고, 조금만 잘하면 눈에 확 띕니다.
이렇듯 한 번 고정된 이미지는 잘 변하지가 않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종교, 기독교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성령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대부분 불 같은 이미지, 방언과 예언과 같은 신비한 현상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는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께서 이 땅에 임하셨을 때의 현상들이 우리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파의 교회들, 대표적으로 순복음 교회와 같은 교회들이 이를 강조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성령이라고 하면 불, 예언, 방언 등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적과 같은 일들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의 전부일까요?
그렇지는 않지요.
성령의 역할은 신비한 일을 행하게 하거나 일으키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성령께서 하시는 일들이 가려지는 경향도 없지 않습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이 성령의 역할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때가 가까이 오자 제자들을 부르시고 성령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보내고, 예수님 없는 시대를,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기 위해 예수님은 성령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 7절과 8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가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유익의 이유를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떠나가고 성령께서 오시는 것.
이것이 어떻게 제자들에게 유익이 될 수 있을까요?
성령님이 오시면 제자들이 기적과 같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성령님의 힘과 능력이 예수님을 능가해서 일까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때도 제자들은 기적을 일으켰고, 예수님도 성령님과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 보냄을 받은 제자들에게 권능이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는 능력과 힘의 근원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과 기적의 일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자신이 떠나가고 성령께서 오시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떠나감과 성령의 오심 사이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오시는 성령은 이것, 예수님의 모든 구속 사역을 제자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의 말씀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떠나가시고 성령께서 오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실상 유익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시는 성령은 이를 위해 제자들과 늘 함께 계실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에 보면 성령의 이름 같은 것이 쓰여져 있습니다.
뭐라고 쓰여져 있나요?
보혜사 성령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처럼 성령님에게도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여호와=스스로 있는 자, 그리스도=구원자
그러면 보혜사는 무엇일까요?
보혜사는 파라클레토스라고 해서,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곁에 있도록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제자들 곁에 늘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유럽인이든 어느 사람이든 상관없이,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 구원 사역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오신 이유, 그것은 기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계속해서 예수께서는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역시도 예수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죄라고 하는 것은 범법과 관계가 있습니다.
법을 어기면 그것을 죄라고 하지요.
저는 여기 계신 몇 분들과 함께 엊그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경복궁도 가고 남산도 갔었는데, 우리는 서울에서 셀 수도 없는 빌딩과 아파트, 수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 수 많은 것들이 유지되고 평화롭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법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법이 모든 것을 정당하게 가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법이 있기 때문에 그 수 많은 것들이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법을 세운 것이고, 모두가 그 법을 따르게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백성을 위해, 또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법이었고,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박해했고,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는 법을 따르지 않은 것, 죄에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죄는 일반적인 사회나 공동체에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을 믿지 않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법을 따르지 않는 것. 이것이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의에 대한 것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께로 가셨습니다.
당시의 유대 사회에서 하나님께로 갔다는 것은 의롭다, 바르다, 옳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공의이시고, 모든 바름은 하나님께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께로 가심으로 자신이 옳았음을, 자신의 구원 사역과 관계된 모든 것이 바른 것임을 나타내십니다.
윤리적인 의, 도덕적인 의, 공공의 의가 바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바르시고, 하나님에게로 가신 예수님의 모든 구원 사역이 바른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의, 우리가 생각하는 공적인 의와 다른 점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될 것입니다.
윤리나 도덕, 공동체가 기준이 아니라 예수님이 기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의롭다 함을 얻을 것이고,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반대했던 이 세상의 임금.
사단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미혹하고,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 따르게 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한 사단은 예수님의 의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보혜사로서 제자들의 곁에서 예수님의 구원을 깨닫게 하고, 예수님의 의로 세상을 심판하는 일.
성령께서는 이 기준을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 13절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께서는 제자들을 진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장래 일도 알려주십니다.
여기서 장래의 일이라는 것은 개인의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개인의 유익을 위해 점을 치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죽음과 부활까지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자는 부활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는 구원이 주어질 것이고, 이 세상은, 사단의 모든 권세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복음서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계신 여러분.
이 세상에서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위해 이 땅에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우리 곁에서 계속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세상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세상의 정욕과 자랑을 따르지 않도록,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장래의 일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단의 권세를 심판하시고, 세상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켜 면류관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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