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일꾼을 보내 주소서(마9:35~10:8)-2026.6.14.성령강림절 후 셋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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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2YIGmKtElxs?si=_KvkupyRW-bUo8bO
(본문 중)
오늘의 복음서는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시며,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다 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회당으로 가셨다는 것은 회당의 모임, 즉 예배에 참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교회가 해야 하는 역할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지고, 예배 가운데 천국 복음이 전해져야 하고, 약한 것이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역할이고 예배의 힘인데, 안타깝게도 근래의 교회는 이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의 성장, 좋습니다.
이웃을 구제하는 것도 좋습니다.
바자회를 하는 것도 좋고, 음악회를 하는 것도 좋고, 북 콘서트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역할은 이런 성장주의나 행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드러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지는 것, 그래서 이를 통해 병으로 고생하고 여러 약함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치유가 임하게 하는 것.
이것이 교회의 역할이고, 예배가 가진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음서에서 나오는 회당도 이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회당으로 모인 사람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은 원문인 헬라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라고 합니다.
이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말합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보통 마음을 심장과 연결시킵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을 할 때, 심장에 손을 얹거나 가리키며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마음의 중심을 심장이 아닌 창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마음이 아픈 것을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이 아프다”라고 표현하십니다.
과거 우리 나라에서도 “애가 끓는다”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애는 창자를 말합니다.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아픔!!
이것이 예수께서 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보시고 느끼신 감정입니다.
회당이 회당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복음서 9장 37~38절의 말씀입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기진한 사람들을 위해, 목자 없는 양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일꾼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일꾼들은 목회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12제자를 불러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언뜻 생각하기에 일꾼은 목회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제자들은 목회를 하기 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배우던 제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꾼을 목회자만으로 한정 지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이 바로 일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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