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4일 성령강림절 후 여덟째 주일 어른 설교
작성자 정보
- 담임목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2,076 조회
- 목록
본문
제목: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본문: 막6:14~29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해마다 연말이 오면 전국 대학교수들이 한 해를 마감하며 그 해의 의미를 사자성어에 담아내고 있다고 합니다.
제 작년 2022년 설문에 참여한 교수 중 과반의 지지를 받아 뽑힌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과이불개(過而不改)”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과이불개(過而不改)시위과의(是謂過矣)'라는 말에서 앞 네 자만 따온 것으로,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과이불개(過而不改)”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개선하지 않은 것’을 말하고, ‘시위과의(是謂過矣)’는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즉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사회적 환경에 빗대어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 활용한다면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는 이 사자성어에 걸맞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잘못에 잘못을 거듭했고, 그로 인해 당시의 최고의 선지자를 죽음으로 내몹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헤롯 안티파스이고, 성경에는 헤롯왕, 또는 분봉왕 헤롯이라고 나옵니다.
분봉왕이라는 것은 한 나라 한 민족의 일부를 다스리는 왕을 뜻합니다.
그래도 왕으로서의 대우를 받고 있었기에 오늘의 복음서에서는 헤롯 안티파스를 헤롯왕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헤롯왕,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와 요단강 동쪽인 페레아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왕이 없던 유대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고, 분봉왕만이 아닌 왕이 되고 싶어했던 야망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였는지, 그는 아버지 헤롯대왕의 명에 순종하여 유대 남쪽의 나바테아 왕국의 딸과 결혼을 합니다.
잠깐 지도를 보겠습니다. (나바테아 왕국 설명)
그러나 모든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의 이복 동생인 헤롯 빌립1세의 결혼식에 참석합니다.
헤롯 빌립1세는 왕족일 뿐 영토를 갖고 있지 않은 왕이었습니다.
즉 힘이 없는 왕족이라는 것입니다.
안티파스가 빌립1세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그만 한 여자를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그 여자가 바로 자신의 이복 동생의 부인이 될 헤로디아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헤로디아도 안티파스에게 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안티파스의 일방적인 관심이 아닌 쌍방의 관심이었다는 것입니다.
동생의 결혼식에서 그렇게 눈이 맞아버린 이 두 사람은 결국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안티파스는 자신의 아내인 나바테아 공주를 친정으로 보내 버립니다.
소박을 놓은 것이지요.
그리고 영토를 갖고 있지 않아 힘이 없었던 이복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뺐어 옵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법이었던 율법에 따르면, 자신의 형제의 아내를 데려올 때는 반드시 형제가 죽고 난 뒤에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형제의 아내를 뺐어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욕정에 눈이 먼 안티파스는 살아 있는 형제의 아내를 뺐어 옵니다.
이 일은 율법을 어기는 일 뿐만 아니라 나바테아 왕국의 화를 돋구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일로 인해 후에 나바테아의 왕은 수 만의 군사를 이끌고 이스라엘로 쳐들어옵니다.
안티파스는 얼른 로마에 SOS를 쳤고,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결국 로마가 중재를 합니다.
만일 로마의 중재가 없었더라면, 나바테아의 힘이 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일은 세례 요한의 죽음 이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러한 조짐을 알고 있었기에, 헤롯 안티파스의 잘못을 강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분봉왕이 율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위험에 끌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라고만 써 있지만,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잘못에도 불구하고 안티파스는 반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례 요한을 잡아다가 옥에 가둡니다.
세례 요한의 입을 막고,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서 였겠지요.
자신의 일로 떠들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안티파스에게는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요한을 가두었지만, 그는 이 일로 번민했습니다.
19~20절입니다.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보호하고,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을 죽이려 하는 기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헤로디아의 위협이 강했지만, 그래도 처형의 권한은 왕에게 있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헤롯왕의 생일 파티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왕의 생일에는 유력자들이 참석합니다.
천부장이라고 써 있는 간부급의 군인들과 귀족들, 정치인, 부자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생일 잔치의 흥을 돋구기 위해서 헤롯 왕의 딸 살로메가 춤을 춥니다.
헤롯 왕은 딸의 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22~23절의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나라의 절반까지도 주리라”라는 말은 진짜 나라를 주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왕들이 기분 좋을 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하는 말이었습니다.
에스더서에서도 바벨론을 물리치고 제국을 형성했던 페르시아 왕이 에스더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당시의 헤롯은 그런 힘 있는 왕도 아니었고, 한 민족의 일부를 맡은 분봉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헤롯이 얼마나 쥐꼬리만한 권력에 취해 있었는지, 얼마나 생각의 깊이가 없는 왕인지를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명석하지도 못하고, 야망과 허세만 가득한 왕.
그래서 자신을 되돌아보기 보다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공포의 정치를 펼치는 왕.
그가 바로 헤롯왕, 헤롯 안티파스였습니다.
이러한 헤롯의 말에 헤롯 왕의 딸은 세례 요한의 목을 구합니다.
이는 세례 요한의 목숨을 늘 노리던 헤로디아의 계략이었습니다.
이에 왕은 근심합니다.
자신을 위해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상대가 세례 요한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력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딸이 세례 요한의 목을 구합니다.
게다가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리라고 공표도 했습니다.
참 곤란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냥 망신 한 번 당하는 것을 택합니다.
아이도 아니고, 이 일이 불러올 바람이 거셀 것이 분명하기에 그냥 면을 한 번 구기고 넘어가는 것을 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헤롯왕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체면과 위신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지 않았습니다.
26~27절의 말씀입니다.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베어”
이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했던 요한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과이불개(過而不改)시위과의(是謂過矣)”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잘못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잘못을 반드시 계산하십니다.
나바테아 왕이 헤롯 안티파스를 잡으려고 진격해 오자, 당시의 사람들은 이 일이 모두 세례 요한을 죽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일이 로마의 중재로 잘 끝나게 되었지만, 헤롯 안티파스의 정치 생명은 많이 약화됩니다.
백성을 위험하게 했고, 로마의 힘을 빌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헤로디아의 오빠인 헤롯 아그립바 1세와의 다툼으로 인해,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는 갈리아, 지금의 프랑스로 유배되어 생을 마감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헤롯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마치 이 세상에서 잘 사는 법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는 것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더 선호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크리스찬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출세를 위해 세상의 기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살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헤롯 왕과 헤로디아의 결말이 어떤지를 보십시오.
세상에서도 잘못이 반복되면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이 있다면 속히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은 잘못을 낳고, 그 잘못은 커져서 괴물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 괴물이 된 잘못은 하나님에 의해 계산된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매주 예배 가운데 지난 한 주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이 시간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고, 내 잘못을 반성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반성과 회개의 시간을 허무하게 흘려 보내서는 안 됩니다.
잘못을 기억하고 속히 바로 잡아야 합니다.
헤롯처럼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생활을 늘 돌아봅시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주님과 이웃에게 용서를 구합시다.
주께서는 자신을 돌아보며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 은혜 안에서 평안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본문: 막6:14~29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해마다 연말이 오면 전국 대학교수들이 한 해를 마감하며 그 해의 의미를 사자성어에 담아내고 있다고 합니다.
제 작년 2022년 설문에 참여한 교수 중 과반의 지지를 받아 뽑힌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과이불개(過而不改)”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과이불개(過而不改)시위과의(是謂過矣)'라는 말에서 앞 네 자만 따온 것으로,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과이불개(過而不改)”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개선하지 않은 것’을 말하고, ‘시위과의(是謂過矣)’는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즉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사회적 환경에 빗대어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 활용한다면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는 이 사자성어에 걸맞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잘못에 잘못을 거듭했고, 그로 인해 당시의 최고의 선지자를 죽음으로 내몹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헤롯 안티파스이고, 성경에는 헤롯왕, 또는 분봉왕 헤롯이라고 나옵니다.
분봉왕이라는 것은 한 나라 한 민족의 일부를 다스리는 왕을 뜻합니다.
그래도 왕으로서의 대우를 받고 있었기에 오늘의 복음서에서는 헤롯 안티파스를 헤롯왕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헤롯왕, 헤롯 안티파스는 갈릴리와 요단강 동쪽인 페레아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왕이 없던 유대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고, 분봉왕만이 아닌 왕이 되고 싶어했던 야망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였는지, 그는 아버지 헤롯대왕의 명에 순종하여 유대 남쪽의 나바테아 왕국의 딸과 결혼을 합니다.
잠깐 지도를 보겠습니다. (나바테아 왕국 설명)
그러나 모든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의 이복 동생인 헤롯 빌립1세의 결혼식에 참석합니다.
헤롯 빌립1세는 왕족일 뿐 영토를 갖고 있지 않은 왕이었습니다.
즉 힘이 없는 왕족이라는 것입니다.
안티파스가 빌립1세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그만 한 여자를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그 여자가 바로 자신의 이복 동생의 부인이 될 헤로디아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헤로디아도 안티파스에게 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안티파스의 일방적인 관심이 아닌 쌍방의 관심이었다는 것입니다.
동생의 결혼식에서 그렇게 눈이 맞아버린 이 두 사람은 결국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안티파스는 자신의 아내인 나바테아 공주를 친정으로 보내 버립니다.
소박을 놓은 것이지요.
그리고 영토를 갖고 있지 않아 힘이 없었던 이복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뺐어 옵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법이었던 율법에 따르면, 자신의 형제의 아내를 데려올 때는 반드시 형제가 죽고 난 뒤에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형제의 아내를 뺐어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욕정에 눈이 먼 안티파스는 살아 있는 형제의 아내를 뺐어 옵니다.
이 일은 율법을 어기는 일 뿐만 아니라 나바테아 왕국의 화를 돋구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일로 인해 후에 나바테아의 왕은 수 만의 군사를 이끌고 이스라엘로 쳐들어옵니다.
안티파스는 얼른 로마에 SOS를 쳤고,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결국 로마가 중재를 합니다.
만일 로마의 중재가 없었더라면, 나바테아의 힘이 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일은 세례 요한의 죽음 이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러한 조짐을 알고 있었기에, 헤롯 안티파스의 잘못을 강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분봉왕이 율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위험에 끌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라고만 써 있지만,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잘못에도 불구하고 안티파스는 반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례 요한을 잡아다가 옥에 가둡니다.
세례 요한의 입을 막고,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서 였겠지요.
자신의 일로 떠들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나 안티파스에게는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요한을 가두었지만, 그는 이 일로 번민했습니다.
19~20절입니다.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보호하고,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을 죽이려 하는 기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헤로디아의 위협이 강했지만, 그래도 처형의 권한은 왕에게 있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헤롯왕의 생일 파티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왕의 생일에는 유력자들이 참석합니다.
천부장이라고 써 있는 간부급의 군인들과 귀족들, 정치인, 부자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생일 잔치의 흥을 돋구기 위해서 헤롯 왕의 딸 살로메가 춤을 춥니다.
헤롯 왕은 딸의 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22~23절의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나라의 절반까지도 주리라”라는 말은 진짜 나라를 주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왕들이 기분 좋을 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하는 말이었습니다.
에스더서에서도 바벨론을 물리치고 제국을 형성했던 페르시아 왕이 에스더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합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당시의 헤롯은 그런 힘 있는 왕도 아니었고, 한 민족의 일부를 맡은 분봉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헤롯이 얼마나 쥐꼬리만한 권력에 취해 있었는지, 얼마나 생각의 깊이가 없는 왕인지를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명석하지도 못하고, 야망과 허세만 가득한 왕.
그래서 자신을 되돌아보기 보다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공포의 정치를 펼치는 왕.
그가 바로 헤롯왕, 헤롯 안티파스였습니다.
이러한 헤롯의 말에 헤롯 왕의 딸은 세례 요한의 목을 구합니다.
이는 세례 요한의 목숨을 늘 노리던 헤로디아의 계략이었습니다.
이에 왕은 근심합니다.
자신을 위해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상대가 세례 요한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도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력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딸이 세례 요한의 목을 구합니다.
게다가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리라고 공표도 했습니다.
참 곤란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냥 망신 한 번 당하는 것을 택합니다.
아이도 아니고, 이 일이 불러올 바람이 거셀 것이 분명하기에 그냥 면을 한 번 구기고 넘어가는 것을 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헤롯왕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체면과 위신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에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지 않았습니다.
26~27절의 말씀입니다.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베어”
이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했던 요한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과이불개(過而不改)시위과의(是謂過矣)”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잘못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잘못을 반드시 계산하십니다.
나바테아 왕이 헤롯 안티파스를 잡으려고 진격해 오자, 당시의 사람들은 이 일이 모두 세례 요한을 죽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일이 로마의 중재로 잘 끝나게 되었지만, 헤롯 안티파스의 정치 생명은 많이 약화됩니다.
백성을 위험하게 했고, 로마의 힘을 빌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헤로디아의 오빠인 헤롯 아그립바 1세와의 다툼으로 인해,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는 갈리아, 지금의 프랑스로 유배되어 생을 마감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헤롯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것이 마치 이 세상에서 잘 사는 법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는 것보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더 선호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크리스찬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출세를 위해 세상의 기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살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헤롯 왕과 헤로디아의 결말이 어떤지를 보십시오.
세상에서도 잘못이 반복되면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이 있다면 속히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은 잘못을 낳고, 그 잘못은 커져서 괴물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 괴물이 된 잘못은 하나님에 의해 계산된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매주 예배 가운데 지난 한 주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이 시간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고, 내 잘못을 반성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반성과 회개의 시간을 허무하게 흘려 보내서는 안 됩니다.
잘못을 기억하고 속히 바로 잡아야 합니다.
헤롯처럼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생활을 늘 돌아봅시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주님과 이웃에게 용서를 구합시다.
주께서는 자신을 돌아보며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 은혜 안에서 평안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