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우리는 기도하고 낙심치 않습니다(눅18:1~8)-2025.10.19.성령강림일 후 열아홉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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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UNUkrnoEKvc?si=YGBfwb8D68GJnjGY
(본문 중)
세상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기란 참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믿음이 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부와 명예와 권력이 큰 힘을 갖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쫓아 살아갑니다.
부를 쌓고, 이름을 날리며, 자신의 말 한마디에 힘이 실리기를 바랍니다.
신앙 생활을 하든 하지 않든, 목사이든 성도이든 다 비슷합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세상에서 작용하는 힘이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있기를 바라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자기성찰을 해보니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입으로는 뭐 믿음이다 은혜다 말은 하지만, 저는 여전히 세상의 힘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에게 믿음은 전혀 다른 것을 요구합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과 전혀 상관없는 섬김과 낮아짐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부도 명예도 좀 누리고 싶은데, 믿음은 하나님만 추구하고 의지할 것을 명합니다.
참 지키기가 어려운 명령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멀리하고, 이웃을 섬기고 스스로 낮아지기란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세상은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입니다.
스스로 낮아진 사람에게 세상은 강자의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과연 우리가 믿음의 요구만을 따라 살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 세상의 요구도 받아들이고, 좀 적당히 섞어서 사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것이 아닐까요?
적어도 그런 세상의 힘에 맞설 만한 힘을 갖추면 좋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 속에서 살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늘 기도하며, 믿음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순간에도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의 복음서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그 의미가 곡해 되어 우리들에게 전해진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과부처럼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복음서의 의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낙심할 일이 생기더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낙심치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믿음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당시의 세상에서 힘이 없는 사람 “과부”를 등장시키십니다.
그리고 그 세상의 힘에 가장 쉽게 휘둘렸던 “불의한 재판장”을 등장시킵니다.
성경에서 과부는 나그네와 고아와 함께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스스로 돈을 벌 힘도 없고, 남편이 없기에 세상에서 보호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과부를 보호하고자 과부에 대한 억압을 금지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십일조로 과부를 도우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복음서의 과부는 그러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고, 그 일로 재판장을 찾아갑니다.
신명기 16장에 따르면, 재판장은 율법에 따라 공의롭게 재판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일부 재판장들은 큰 권력에 아부하며, 약자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재판장들처럼 복음서의 재판장도 과부의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2절에는 이 재판장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율법을 지킬리가 없습니다.
사람을 무시하니 과부 역시도 무시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복음서의 재판장은 과부의 사정을 듣지도, 억울함을 해결해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에게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끈질김”입니다.
과부는 자주 재판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함을 해결해 달라고 계속해서 요청합니다.
재판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 계속된 요청을 들어줄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4절의 말씀처럼 과부의 요청을 얼마 동안 듣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부의 끈질김이 더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과부가 자꾸 찾아오자 재판장은 자신의 생각을 바꿉니다.
4~5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과부가 자꾸 찾아와 귀찮게 하자 재판장은 과부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기로 합니다.
과부의 끈기가 재판장의 불의함을 이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마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6~7절)”
이 말씀은 하나님이 불의한 재판장이라는 말이 아니지요.
불의한 재판장도 밤낮으로 졸라대는 사람에게 설복 당해 옳은 일을 하는데, 하물며 정의로우신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음대로 살고자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고,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기대지 말고, 세상의 힘을 탐내지 말고,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만 바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믿음의 위대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제1봉독인 창세기 32장도 이와 같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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