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복(福)과 화(禍)(눅16:19~31)-2025.9.28.성령강림일 후 열여섯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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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fACIJvRzIFk?si=iYZ6jttUsnwE5RdI
(본문 중)
부요한 삶!! 이것을 원치 않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궁핍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가난이 삶의 목표이고, 거지로 사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부와 가난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면, 다들 부를 택할 것입니다.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지고, 즐기고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 인생에 예수님께서는 큰 화두를 던지십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6:20)”
모두가 부를 원하고 가난을 피하는 인생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냥 복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을 정도입니다.
천국은 부럽지만, 가난은 부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의 복음서에서 더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부자는 사후에 지옥으로 가고, 거지 나사로는 천국으로 갑니다.
이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부를 미워하고 가난을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가난해지는 것을 우리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의 복음서의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부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두 부요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부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부를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비트십니다.
천국은 가난한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시대에 따라 부의 개념이 변하는 것일까요?
구약 시대의 부는 좋은 것이지만 신약 시대의 부는 나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약 시대에서도 예수님의 장사를 도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나 바울의 조력자였던 루디아,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은 부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도 부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부자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는 부요함이 가진 책임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부요한 사람들, 그들은 부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부를 활용해 이웃을 도왔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레위기 23장 22절에는 토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추수할 때 떨어진 곡물을 줍지 말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는 이를 그대로 행합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명기 14장을 보면 3년째 드리는 십일조는 땅을 받지 못한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한 것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즉, 부요한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가난한 사람들을 사용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부에 대한 책임은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부를 쌓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대대로 부를 이어 나갔고, 가난한 사람들은 대대로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기가 막힌 것은, 부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생각만이 남게 되면서, 가난이 하나님의 저주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 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부와 부자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자, 부라는 복이 화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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