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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8일 성령강림절 후 열여섯째 주일 어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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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임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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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방에 임한 여호와의 날

본문: 7:24~37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가끔 우리 아이들이 말을 안 들을 때마다, 제 자신을 돌아보고는 합니다.

제 어렸을 때를 생각하고, “나는 어땠지? 학창 시절의 나는 어떤 학생이었지?” 기억 속에 잠자던 나를 깨워봅니다.

그러면 마음 한 구석이 편안해집니다.

~~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참 잘 크고 있구나!! 나 보다 낫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한 속 좀 썩였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저를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아이들은 참 부모 마음대로 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부모의 원대로 컸으면 다들 이 나라의 역군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나라가 세계 1등 국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 정도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원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라는 것을 부모님들도 깨달아야 합니다.

저도 우리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컸으면, 법관이나 외교관이 되어 있을 겁니다.

다행히 그렇게 안 커서 목사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소명이 어머니의 소원보다 쎈 거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지요.

그 마음이 우리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

우리들은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지난주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유대인들의 정결례와 그로 발생한 차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유대인들은 자신의 신앙의 중심이 되는 정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이 최선은 타민족에 대한 구별로 이어졌습니다.

신앙의 열심이 이웃에 대한 벽을 쌓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벽은 이방에 대한 무지와 멸시, 오해와 차별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니 이를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곧바로 두로라는 곳으로 가십니다.

그 곳은 갈릴리의 북쪽, 바로 이방 지역입니다.

 

이방과의 접촉, 정결례를 중요시하는 유대인에게는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일 겁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방으로 가셨고, 그 곳에서 한 여인과 만나십니다.

이 여인에 대해서 복음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25~26절의 말씀입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이방 지역에서 만난 여인, 그 여인 역시 그 지역의 사람이었습니다.

수로보니게는 수리아 지역의 베니게를 가리키는 말로 시리아의 페니키아라고도 합니다.

당시의 베니게는 고대 그리스와 함께 도시 국가를 이룬 지중해 해안 쪽 나라입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헬라적인 문화와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고자 헬라 문화를 적극 반대했기 때문에, 베니게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베니게 사람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두로 지방의 베니게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싫어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두로의 주민들은 베니게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도 유대인들을 나쁘게 말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두로로 가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로의 수로보니게 여인은 유대인인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은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의 의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7)”

 

이전에 회당장 야이로가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할 때, 예수님 어떻게 하셨습니까?

회당장과 같이 딸을 고치러 가셨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도 같이 가셔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그 이유가 예수님의 대답에 잘 나타나 있지요.

자녀로 먼저 배부르게 하겠다.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않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거절하신 이유였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예수님도 마치 이 여인을 더럽게, 부정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자녀와 개라니요.

누가 자녀고 누가 개입니까?

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모두가 같은 자녀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대답을 잘 살펴보면 여러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대답을 유대인의 입장에서 하셨습니다.

선택 받은 사람들의 배부름, 자녀의 떡, 그리고 개

이것은 유대인의 선민 사상을 잘 나타내 줍니다.

당연히 선민인 자신들이 배불러야 하며, 모든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들의 떡이고, 이방인들은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선민 사상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런 선민 사상에 먼저라는 말을 넣으십니다.

그리고 이 먼저라는 말은 선민 사상을 영구적이고 숙명적인 것에서 순차적인 것, 시간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저 유대인들은 먼저 배부름을 얻었을 뿐입니다.

먼저 선택 받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을 뿐,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곧 그 선택이 다른 민족에게도 갈 것입니다.

그들이 개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방인들.

그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대답에서 확정이 됩니다.

28절입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루터는 1525년 사순절 설교에서, 이 여인을 완전한 신앙의 모범으로서 소개합니다.

변치 않는 신앙의 모범이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신뢰의 모범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거절에도 물러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러 서지 않는 신앙.

이 모범의 신앙을 통해 이방에도 그리스도의 구원이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부스러기라도 원한다는 여인의 말에 예수님은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인한 이방의 첫 구원임은 물론이고, 선민 사상이 깨지는 첫 번째 장면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는, 백성의 배부름은, 유대인의 것만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떡을 받을 수 있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정결례가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신뢰가 우리 모두를 거룩하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이방 여인을 통해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를 시작으로 놀라울만한 행보를 보이십니다.

31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여러분, 잠깐 앞의 화면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예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난 두로라는 곳은 갈릴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방 지역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두로보다 갈릴리에서 더 먼 시돈이라는 곳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그 이후 데가볼리로 가셨고, 다시 갈릴리 호수 동쪽에 이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니신 곳은 모두가 이방 지역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께서는 무엇을 하셨을까요?

복음서에 쓰여져 있지는 않지만, 늘 하시던 대로 하나님의 은혜, 곧 복음을 전하셨지 않을까요?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두 선택 받은 민족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율법이 아닌 복음이 다스리는 나라.

혈통의 선민이 아닌 믿는 자가 선민이 되는 나라.

참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를 확정하시기 위해 갈릴리 호수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치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오늘의 복음서의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오늘의 제1봉독이었던 이사야서 35장에서 이사야가 여호와의 날에 일어나는 일을 예언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35 5~6절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저는 자는 사슴과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사야의 예언대로 여호와의 날이 임했습니다.

메시아를 통해 여호와의 날, 구원의 날이 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날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여호와의 날이 아닙니다.

유대인만을 위한 날이 아닙니다.

모두를 위한 여호와의 날입니다.


 예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치셨던 갈릴리 호수는 갈릴리 동쪽, 데가볼리 지방입니다.

그 곳은 예수께서 주로 활동하셨던 갈릴리 지역과는 다른 곳입니다.

유대인들은 물론 수많은 이방인들이 함께 살던 곳, 그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경계가 희미해진 곳.

그 곳에서 예수께서는 예언을 성취하십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치시며 에바다”, “열리라고 하십니다.

유대인의 마음이 열리고, 이방인의 생각이 열리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정결례와 선민 의식들로 인해 닫혀진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열림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기를, 그래서 택함 받은 민족만이 아닌 모두의 여호와의 날이 되기를 예수께서는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안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건강한 사람도 병든 사람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못 듣는 사람도 말 못하는 사람도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모두가 회복될 것이고, 닫힌 모든 것이 열릴 것입니다.

이것이 참다운 여호와의 날이고 그리스도의 구원인 것입니다.

주께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기뻐합시다.

세상의 걱정과 두려움에 구원의 기쁨을 빼앗기지 맙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하늘의 떡,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 은혜가 언제나 여러분을 이끄시고 지킬 것입니다.

그리고 늘 은혜 가운데서 평안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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