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일 성령강림절 후 열다섯째 주일 어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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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본문: 막7:14-23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주와 이번 주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정결에 대해서 민감한지를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잠깐 미쉬나 중 정결의 책인 “토호롯”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미쉬나는 구전 율법과 그 해석을 정리한 것인데, 그 중 큰 부분을 할애하여 정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기독교인인 우리가 믿음에 대해 깊게 다루는 것처럼, 유대인은 정결에 대해 깊게 다룹니다.
그만큼 정결에 대해 진심이고, 정결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왜 이렇게 정결에 대해서 민감할까요?
그것은 그들의 정결이 그들의 신앙을 말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으로서 정결을 지키고 부정한 것을 멀리하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바른 신앙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결과 정결에 대한 의식은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을 낳았습니다.
유대교적인 정결에 무관심한 이방인과 정결이 곧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과는 어울릴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자신들의 정결을 지키길 요구했고, 이것을 지키는 자만이 유대교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의 청중은 지난 주 복음서의 청중과 다릅니다.
지난 주는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청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음서의 청중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제자들로 구성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민감한 정결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 중 부정한 것은 없다!! 나오는 것이 부정한 것이다!!”
이 해석은 부정한 것을 멀리하며 자신의 정결을 지켰던 유대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을 따랐던 유대인들,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로 유대인들로 구성된 초대교회는 정결에 대한 여러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살던 유대인들, 즉 과거의 전통에 대해 잘 알고 지켜온 사람들은 정결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방, 그리스 문화 속에서 살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정결을 지키는 이유도 몰랐고 지킬만한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왔을 때, 그들 사이에서는 분명 정결의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지역의 교회에서는 정결을 지키려 했을 것이고, 이방 지역의 교회에서는 정결을 지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두 가지 색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교회로 모였을 때입니다.
정결을 지키는 사람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 문제로 다투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교회가 갈라질 위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이 이 정결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것이 “예수께서는 정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마가 또는 마가의 공동체는 교회를 위해 오늘의 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정결을 중요시 여기는 유대 크리스찬들과 정결에 대해 잘 모르는 이방 크리스찬들을 위한 예수님의 말씀!!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복음서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정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복음서 15~16절입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무엇이 부정하고 더러운 것일까요?
레위기에 기록된 부정한 것들이 부정한 것일까요?
아니면 부정한 것을 잘 모르고 먹는 사람들이 부정한 것일까요?
지난 주 저는 여러분들께 레위기에 기록된 부정한 것들을 말씀드리면서, 부정한 것들이 위생과 전혀 관련이 없지는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생은 전염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피나 시체, 피부병자는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접촉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생물들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구분되었습니다.
이 역시도 위생과 관련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광야 생활을 마친 후에도 이 율법들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 율법을 지킴으로 자동적으로 가나안의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구분되었습니다.
생활에 가장 기본적인 위생과 먹을 것들로 나뉘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결 의식도 이방인과 구분되는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독특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나라가 세워지고, 분리되고, 망하면서 더욱더 짙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대 때에는 이방인과의 접촉까지도 부정하다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외출하고 돌아온 다음 그들은 손을 씻었고, 밥 먹기 전에 그릇들을 씻었습니다.
위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진짜 더러운 것은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들어가든 사람 안에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곧 배설물로 배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먹든, 레위기에서 금한 생물이든 이방인과 접촉한 음식이든,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아닌 몸으로 들어가고 곧 배출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다릅니다.
생리현상인 배설물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21절의 말씀처럼 사람의 마음에서는 “악한 생각들”이 나옵니다.
음란과 도둑질, 살인과 간음과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이 모든 것이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이러한 것으로 스스로를 더럽게 하고, 다른 이의 마음으로 들어가 그들도 더럽게 합니다.
그리고 이 악한 생각들로 율법의 기본이 되는 십계명 조차 지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열해 말씀하신 악한 생각들을 보십시오.
모두가 십계명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백 날 천 날 손을 씻어도 정결하게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정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정결 의식을 한다고 해도 정결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겠지요.
매 주일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우리들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정결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웃을 시기하고 차별하고 미워하면서 어떻게 예수께서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시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곧 우리 마음 속에서 더러운 것이 나와 우리를 다시 더럽힐 것입니다.
우리를 더럽히는 것, 그것은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것,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위해 늘 은혜를 간구합시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임하기를,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사람의 마음에서는 늘 더러운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이 더러운 것까지도 정결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작은 은혜가 우리의 모든 악함보다 큽니다.
이를 믿고 은혜를 구하는 여러분들 위에 하늘의 정결함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설교 후 베풀어지는 성만찬이 여러분들을 정결하게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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