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5일 성령강림절 후 열넷째 주일 어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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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 생활에 “반드시”라는 것은 없다
본문: 막7:1-13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주 화요일 새벽 5시 반 즈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새벽기도회 준비를 하려고 교회에 내려와 불을 켜고 마이크를 셋팅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자신은 단 한 번도 교회를 다녀 본적이 없고, 요즘에 어려움이 많아 교회에 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요일 오전 11시에 예배를 드리니 그 때 오시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무엇을 가지고 와야 하는지를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성경책인 줄 알고, 성경책이라면 교회에 얼마든지 있으니 그냥 오시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제 대답이 충분치 않았는지,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이 전혀 없냐고 재차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헌금을 말씀하시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한 번도 다녀보지 않으신 분이 헌금에 대해서 알 리도 없고, “그러면 헌금 가지고 오세요”라는 말도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저도 무어라 대답해 줄 것이 없어서 잠시 침묵하고 있는데, 그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혹시 신분증이라든가, 자기를 증명할 수 있는 그런 것 안 들고 와도 됩니까??”
교회를 다녀본 본 적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교회에 신분증을 들고 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그 분의 물음이 반대로 조금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그냥 오시면 되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 분께서 신기한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신분증조차 들고 오지 않는 것이 신기하게 보였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기존에 교회를 다니시는 분, 또는 다니셨던 분에게 신분증을 가지고 교회에 오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여러분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여러분들도 이상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면 교회에 신분증을 들고 온다면 좋은 점도 꽤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테러에 대한 위험이 별로 없으니 그렇지만, 테러 위험 국가에서는 신분증이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 뿐 아니라 신천지 등 다른 이단들의 출입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고, 만에 하나 교회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신분증은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의 신분증을 제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러한 생각도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 누가 압니까? 신분증이 필요할 때가 올 수도 있을 겁니다.
예전 일본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고구마를 나누어 주며 전도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고구마를 나누어 준다는 이유로 교회 대표가 전도활동을 위해 구청에 신고를 했고, 채변 검사를 했습니다.
전도 활동을 위해 구청에 신고가 필요한 것도 이상하고, 채변 검사를 한 건 더 이상합니다.
하지만 그 곳의 규칙에 따라 위생과 책임 소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렇게 했어야 했습니다.
이 외에도 교회에서 쓰레기 버리는 것도 일반으로 할 수 없고, 교회가 종교 법인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교회의 제직을 구청에 신고하고 등록해야 하는 것도 우리 나라와 다릅니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지요?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은 없습니다.
사정과 형편에 따라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헌금의 세액 공제, 즉 헌금에 대한 연말 정산도 처음에는 여러 말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어떻게 기부금으로 여겨 공제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많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논의들이 별로 많지 않고, 대부분 헌금에 대한 세액 공제를 받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종교 단체에 대한 세금이라든가, 목회자 사례에 대한 세금 등등.
지금은 입장 차이가 있어서 손을 대지 못하는 일들도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일어나는 일들은 “반드시”나 “꼭”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없고, 반드시 하면 안 되는 것도 없습니다.
교회의 전통이나 관습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전통과 관습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환경과 사정에 따라 변하거나 지키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라는 것은 없습니다.
전통과 관습은 성서와 같은 규범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교회는 여러 전통과 관습에 묶여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이 지금의 수많은 가나안 성도들을 만들었고, 교회의 빈 자리들을 생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무엇이든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과감히 제해버릴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오늘의 복음서가 바로 이러한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전통으로 인해 규범이 지켜지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편취해 지키는 자들이 무슨 일을 행하는 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유대인들의 전통, 즉 오래된 관습을 지키는 것에 대한 논쟁입니다.
어린이 설교 때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유대인들은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오면 손을 씻었습니다.
이는 위생과도 상관이 있지만,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위생보다는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정결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부정한 것, 즉 더러운 것과 접촉을 하게 될 때 자신의 몸을 씻는 행위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씻어 다시 정하게 되는 것.
이것이 정결례가 가진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정결례는 과거 유대인들의 광야 생활 중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광야 생활의 특성상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전염병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염될 수 있는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부정한 것과 접촉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월경이나 하혈하는 여인과의 접촉, 시체와의 접촉, 죽은 가축과의 접촉, 피부병자와의 접촉 등을 성경에서는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유랑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정결례는 필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정결례는 오히려 유대인들이 정착을 한 뒤에 더욱더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위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면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 기록된 것과 같은 수 많은 정결례의 전통도 생겼습니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책이 정결에 관한 “토호롯”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미쉬나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의 구전 율법을 정리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토호롯”은 정결한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엄청 두껍지요?
미쉬나는 총 6권으로 되어 있는데, 한 권 전체를 정결 의식에 사용할 정도로 유대인들의 정결 의식은 민감하고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미쉬나를 성경의 말씀처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미쉬나에서 말하는 정결은 유대인들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 신전을 중심으로 살던 사람들은 그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는 이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결례를 행하지 않고 떡을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방인들과 가까이 살고 있는 갈릴리 사람들이라서 그랬는지 세세한 전통까지는 지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이를 간과하지 않았고, 예수님께 제자들의 잘못을 따집니다.
5절의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이 말 속에서는 숨은 의도가 있습니다.
단순히 외출 후 돌아왔을 때 정결례를 하지 않았다는 것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활동하던 곳 갈릴리는 이방지역과 가깝고 이방인들이 꽤 있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이방인들과의 접촉이 있었을 수 있는데 왜 정결례를 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접촉이라는 것도 좀 신기합니다.
이방인이 만진 물건이나 난간이나 손잡이를 다시 만지는 것도 접촉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외출 후 정결례를 해야한다는 것이 예루살렘의 사람들의 지적입니다.
그러나 이 지적에는 정결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차별이 들어가 있습니다.
자신들만이 깨끗한 존재이고 이방인들은 더럽다는 우월감과 경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전통을 지키지 않은 제자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런 지적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는 이사야의 예언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8~9절)”
저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계명이 뜻하는 바가 이웃에 대한 사랑, 즉 이방인에 대한 포용과 수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복음서인 마가복음 7장의 하반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을 무조건 부정하다 여겼던 예루살렘의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통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전통을 계명보다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고르반”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 “고르반(코르반)”이라는 것은 유대인의 전통 중 하나로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께 바치는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고르반”이라고 말한 물건이나 재물에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일부 유대인들은 채무가 있어도 “고르반”,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이라고 말하면서 갚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부모의 봉양까지도 이어졌습니다.
재물의 여유가 있으면서 부모를 봉양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재물을 “고르반”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와 같은 ‘고르반’에는 강제 규정이 없었습니다.
‘고르반’이라고 말했어도 성전에서 그 재물을 가져와 하나님께 드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발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고르반’ 전통을 이용했습니다.
‘고르반’이라고 말하고 부모를 봉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고르반’한 재물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지적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부모 봉양은 십계명에 적힌 큰 계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르반’의 전통을 말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맞고 이익되는 것만 편취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척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속이려고 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 ‘고르반’도, 그리고 ‘정결례’도 모두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고르반’ 안에는 사람의 욕심과 이기심이 있었습니다.
‘정결례’ 안에는 차별과 경멸이 있었습니다.
두 가지 다 하나님의 계명과는 엇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말하며 자신을 거룩하고 경건한 척 꾸몄습니다.
그 속에 수많은 악한 생각이 가득차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고르반’을 말씀하시면서 자신들의 정결을 찾는 사람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전통을 내세우며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의 신앙 생활 중에서 이러한 것들이 있습니까?
입으로는 하나님을 말하지만, 그 안에 인간적이고 악한 생각들이 가득차 있는 관습이나 전통이 있나요?
만일 그렇다면 그러한 전통과 관습은 과감히 버리십시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 ‘반드시’라는 것은 없습니다.
신앙 생활은 늘 변할 수 있습니다.
환경과 형편에 따라,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 아닌 다른 것에 너무 집중하지 마십시오.
기본에 충실한 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중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중심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들 위에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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