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4일 성령강림절 후 열한째 주일 어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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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이 주는 영생의 떡
본문: 요6:22-35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늦은 밤까지 또는 새벽까지 올림픽을 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는 주로 뉴스나 하이라이트를 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우리 나라가 메달을 몇 개나 땄나 검색해 봅니다.
예상한 것보다 메달도 많고, 순위도 높아서 요즘에는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 보면 저도 참 국뽕인 것 같습니다.
올림픽이 한창이니 성경에 나와 있는 올림픽에 관련된 말씀에 대해서도 잠깐 짚고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24~25절)”
사도 바울이 말하는 운동장은 원문으로 “스타디오”라고 하는데, 이것은 약 200m의 단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스타디움”, 즉 경기장이라는 단어로 굳어지게 됩니다.
이 “스타디오”에서 열렸던 당시의 대표적인 경기는 총 4개가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올림피아 도시에서 열렸던 “올림피아 제전”이었고, 지금의 올림픽의 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네미아 유적지에서 열렸던 “네미아 제전”,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의 고향인 피티아에서 열린 “피티안 제전”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 지역에서 열렸던 “이스트미안 제전”이 있습니다.
이 4개의 제전이 당시의 대표적인 경기였습니다.
그리고 이 제전의 우승자는 월계수나 올리브 나무로 만든 승리의 관을 받았습니다.
바로 월계관입니다.
이것은 운동하는 자들의 최고의 명예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 최고의 명예를 말하면서, 운동하는 자들이 월계관을 목표로 준비하는 것처럼 교인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처럼 필요에 따라서는 절제할 줄도 알고, 믿음을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해서 달릴 줄 아는 그런 신앙인.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월계관이 아닌 영원한 승리의 관을 얻기 위해 달리는 신앙인이 되자는 것이 사도 바울의 권면이었습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을 보면서 많은 선수들이 울음을 보았습니다.
메달을 따는 따지 못하든 그들은 울었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고, 자신이 있었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선수들을 보면서 저는 반성이 되었습니다.
내 신앙 생활에 열심을 가지고 있는가?
내가 하는 목회적인 일에 최선을 다했는가?
영원한 승리의 관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크리스찬에게는 신앙을 위한 열심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이 세상에 속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크리스찬으로 살기 위해, 마귀의 유혹에 실족하지 않기 위해, 주의 일을 하기 위해 열심을 내야 합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기 위해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여러 세상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승리의 관을 위해 달리고 있지 않으면, 크리스찬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에도 이러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오병이어의 기적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 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시 찾아 옵니다. (지도)
그들은 먼저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곳으로 예수님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예수님을 찾지 못하자 다시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갑니다.
그리고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 15절은 그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고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6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은 배부름 때문이었습니다.
떡과 물고기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 속에서 떡과 물고기를 발견한 것입니다.
믿음을 위한 표적이, 배부름을 위한 표적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환영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들의 소망이 세상의 소망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소망은 어떻습니까?
무엇을 기도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구하고 기도하는 것은 세상의 소망과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 속에서 하나님이 아닌 떡과 물고기를 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일보다 우리의 배부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리고 오병이어를 먹었던 사람들처럼, 우리의 배부름을 구하고 기도합니다.
참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27절).”
예수께서는 우리가 영생의 양식을 위해 일하기를 바라십니다.
자신의 부와 영달을 위해 달음박질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영생을 위해 달음박질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배부름이 아닌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세상의 가르침이 아닌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병이어가 주어진 참 목적이었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배부름만을 바라는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믿으라는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30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저는 우리가 보고 있는 개역개정판 성경이 이 구절을 잘 번역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무슨 기적을 보여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오병이어 말고 다른 기적을 보여달란 말입니다.
떡 5개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인 그런 기적 말고 더 큰 기적을 보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31절)”
이 말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은 만나를 먹었으니, 당신이 행한 오병이어과 비슷한 것 아닙니까?” 라는 말입니다.
정말… 막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의 배부름을 채우지 못하니 아무 말이나 해서 자신들의 화풀이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내린 참 떡, 생명의 떡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32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이 말씀을 찬찬히 읽어보면 “모세가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 곧 하나님이 너희에게 참 떡을 주신 것이다”는 말로 읽힙니다.
물론 이 말씀도 굉장히 은혜로운 말씀이긴 하지만, 제 생각에는 답변으로서는 약간 동문서답의 느낌이 있습니다.
“만나와 오병이어와 다를 바가 뭐 있습니까”라고 공격적인 질문에 어울리는 답은 아닙니다.
그래서 원문을 찾아봤더니 원문은 이렇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말한다. 너희에게. 모세가 주지 않았다. 하늘로부터의 떡을.”
“다만 나의 아버지께서 주신다.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된 떡을.”
이렇게 보니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모세는 하늘의 떡을 준 것이 아니다. 다만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하늘의 참 떡을 주신 것이다”
즉, 모세의 떡은 하늘의 떡이 아니고, 오병이어의 떡이 참된 하늘의 떡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 떡을 달라고 합니다.
조상들의 만나보다 더 참 된 떡을 항상 받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자신이 바로 이 떡임을 나타내십니다.
만나처럼 배부름을 위한 떡이 아니라 영생을 위한 떡.
육을 채우는 떡이 아니라 영혼을 채우는 떡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늘의 떡인 예수님으로 인해 배고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의 예수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찬은 이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이 아닌 예수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의 월계관이 아닌 영생의 면류관을 향해 달음박질 칩니다.
믿음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때로는 선수처럼 절제하고, 때로는 십자가만 바라보고 전진합니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찬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주는 영생의 떡을 취하십시오.
그 떡이 여러분들을 채우고 목마르지 않게 할 것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께서 여러분들의 영혼을 채우시고 보전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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