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문으로 들어오셔서 부르시는 이(요10:1~10)-2026.4.26.부활절 넷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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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QLTwTBJNq6s?si=c7W0ND73-SrLfSzx
(본문 중)
예수님께서는 자신 앞으로 모인 유대인들에게 양과 목자의 비유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먼저 오늘의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는 오늘의 복음서의 말씀이 나온 계기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목축 방식에 대한 이해입니다.
첫째로 오늘의 말씀이 나온 계기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맹인을 고치신 이야기 잘 아시지요?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맹인을 사람의 눈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를 못 마땅하게 여깁니다.
맹인을 고친 그 날이 안식일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는 말 그대로 쉬어야 하는데, 어찌하여 맹인을 고쳤냐는 이유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갑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안식일 법을 중요하게 여겼던 바리새인들에게는 제법 타당한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고 가기 위해, 그들은 맹인의 부모와 맹인을 여러 이유로 추궁합니다.
맹인의 부모는 바리새인들을 두려워하여 모든 책임을 맹인에게 돌립니다.
그러나 맹인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을 담대히 말하고, 자신을 추궁하는 바리새인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로 받아들입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맹인을 출교합니다.
당시 출교라는 것은 어마 무시한 일이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율법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출교의 의미였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출교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바른 길을 간다는 것은 이처럼 여러 고난을 각오하고, 거치며 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의 복음서를 통해 바른 길을 가는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십니다.
네가 잘못된 것이라 아니라, 그들이 바르지 못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짜 하나님의 백성인 것처럼 말하고, 하나님의 참된 목자인 것처럼 우리 안에 들어와 있지만, 사실 그들은 바르게 들어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문을 통해,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으로 들어왔고, 들어와서 양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하고 빼앗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옳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들은 바르지도 않고, 바른 방법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목자가 올 때, 양들의 주인이 올 때 판가름 날 것입니다.
양들은 주인의 음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두 번째 상식, 이스라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목축 방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 사람들은 거점을 두고 양을 쳤습니다.
양들이 풀을 다 뜯어 먹으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의 시편인 시편 23편에 이 방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편 23편에 뭐라고 쓰여져 있나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당시 목자는 양을 위해 푸른 풀밭과 물가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런 지역을 거점 삼아서, 근처에 양 우리를 만들어 놓고, 밤에는 양을 치던 목자들 모두가 그 한 곳으로 양을 이끌어 우리 안에 넣어 놓습니다.
그러면 이 양, 저 양들이 막 섞이겠지요?
여기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깁니다.
양이 한 두 마리도 아니고, 색깔이 다 다른 것도 아닙니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덩치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목자는 어떻게 자기 양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이 때는 목자가 양을 구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이 목자를 구분합니다.
그래서 다음 날, 목자가 문을 열고 양의 이름을 부르면 양이 우리 안에서 나옵니다.
목자가 이정우라고 부르면 이정우 양이 나오는 거예요.
한권사, 노권사, 신권사 라고 부르면, 한권사양, 노권사양, 신권사양이 나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밖으로 양을 불러낸 뒤, 목자는 자신의 양을 이끌고 또 다른 목축지로 가는 겁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부르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안에서 안 나옵니다.
억지로 밖으로 끌어낸다고 하더라도 데리고 가려고 하면 도망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5절의 말씀입니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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