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마11:2~15)-2025.12.14.대림절 셋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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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My_Y9h92q5I?si=IJisAMRFa3WjfkgG
(본문 중)
앞서 주일학교 설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세례 요한은 메시아가 왕과 같은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실 메시아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고, 손에 키를 들고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진정한 율법을 실현하고, 정의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메시아!!
그것이 세례 요한이 생각했던 메시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행보는 세례 요한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부정한 병들로 가득한 사람들이 모였고, 죄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심지어 세리와 창기들도 모였고, 예수님은 그들과 어울리셨습니다.
이것은 회개를 외치며, 잘못을 지적하던 세례 요한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실망했습니다.
실족했습니다.
그리고 의심을 가졌습니다.
세례 요한은 옥에 갇혀 있는 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헤롯 왕의 잘못과 죄를 강하게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더욱더 실망했을 지 모릅니다.
자신은 이렇게 죄를 지적하다 옥에 갇혀 있는 몸이 되었는데, 예수님은 정의와 율법으로 세상을 다스리지 않고 죄인들과 함께 있으니…
말 그대로 속이 타 들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전하게 합니다.
그것이 오늘의 복음서 2~3절의 말씀입니다.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어쩌면 이런 세례 요한의 질문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생각과 전혀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요한에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4~5절).”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예언자 이사야가 메시아를 두고 한 예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약 700년전, 이미 하나님은 예언자를 보내셔서 메시아가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언대로 행동하셨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대해서는 알고는 있었겠지만, 그것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도 율법과 시대 가운데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바램 대로 정의의 메시아, 심판의 왕이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고, 예수님께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자 의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 역시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 세례 요한과 같은 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침묵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왜 바르고 옳은 사람들에게 시련을 주시는가?
왜 신앙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이렇게 고난을 받는데, 왜 저 죄인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가?
왜 예수님은 다시 오시지 않는가?
이런 수많은 질문과 의심 속에서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어떤 사람은 실족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믿었던 것이 깨졌을 때… 자신이 신뢰했던 것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실망하고 화를 내고 실족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산이 무너진 느낌이고, 자신을 지탱하는 큰 추가 무너진 느낌을 받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반드시 먼저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를 인정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고 신뢰하고 있는가?
내 생각이 바르고 옳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염두에 둘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당장의 결과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실족하지 않을 수 있고, 의심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실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이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우리는 이 땅에 속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일을 이 땅의 지식과 신앙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뜻을 쉽게 깨달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세례 요한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에 뛰어들 만큼, 낙타 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살만큼… 신앙에 진심 어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메시아의 길을 준비할 만큼 세례 요한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이 땅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에 속한 사람이었고, 당시의 문화와 예언과 신앙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에 대해 의심을 가졌고, 실족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땅의 사람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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