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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눅18:9~17)-2025.10.26.성령강림일 후 스무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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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임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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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cE0QBnX7cNs?si=ceGFMAwcOv7BqvLd


(본문 중)


루터는 개신교의 축을 세운 사람이고, 유능한 설교가 였습니다.

얼마든지 성경을 철학적으로, 이성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씀 앞에서는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받아들였습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 예수님도 이것을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믿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바른 믿음일까요?

오늘의 복음서가 이를 잘 나타내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예수께서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조상들의 전통까지도 열심히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열심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자신들도 그렇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집단은 아니였습니다.

워낙에 엄격했고, 큰 열심을 요구하는 집단이라 그 수는 많지는 않았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대략 6000명 정도가 바리새파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열심으로 인해 바리새인들은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존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율법학자들의 대부분이 바리새파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민법의 결의에 참여할 수 있었기에, 적은 수였지만 큰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반면 세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로마를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자들로, 동족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 하나님의 백성을 착취하는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의 일로 인해 이방인들과 자주 접촉했기 때문에 정결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지탄을 받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세리는 곧 죄인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두 사람을 이야기 속에 등장시키십니다.

전혀 비교될 수 없는 두 사람이 오늘의 복음서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성전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 내용은 말 그대로 어마 무시합니다.

11절의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토색하다는 말은 권력이나 힘으로 돈이나 물건을 빼앗는다는 뜻입니다.

 

바리새인은 자신들의 열심에 따라 이런 일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오늘의 복음서의 바리새인도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로마에서 받은 권력으로 세금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같이 있는 세리를 염두에 두고, 자신은 토색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그 연구에 따라 지키기 때문에 무엇이 바른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에 따라 불의를 행하지도, 간음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세리와 같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음서의 바리새인은 다른 바리새인들보다 더 철저한 것 같습니다.

12절에 따르면,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유대인은 금식하는 날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대속죄일과 부림절에 금식합니다.

그리고 스가랴에 나온 몇 번의 연례적인 금식일이 있고, 나라에 일이 일어났을 때 임시로 정해지는 금식일이 있습니다.

그래도 1년에 6~7번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복음서의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2번씩이나 금식을 합니다.

대단한 열심입니다.

 

소득의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역시도 자신의 열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에 기가 죽은 것입니다.

자신은 많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데, 바리새인은 너무나 철저하게, 그것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율법을 지킵니다.

자신이 비교 당해서 속이 상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상대입니다.

그래서 세리는 멀리 서 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가슴을 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3)”

 

우리의 눈으로 볼 때, 바리새인은 참 훌륭합니다.

그에 비해 세리는 참 초라합니다.

역시 바리새인이고, 세리는 참 불쌍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우리의 관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관점을 완전히 뒤바꾸십니다.

14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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