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성령강림절 후 여섯째 주일 어른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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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본문: 막5:21~43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꽤 깁니다.
일반적으로 매주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음서는 한 사건 정도만을 다루고 있는 반면, 오늘의 복음서는 두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건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아이를 살리신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혈루병 여인의 병을 고치신 사건입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이나 연관성은 없습니다.
회당장과 혈루병 여인이 지인이라든가, 회당장의 아이와 여인의 병이 같은 병이라든가, 같은 회당에 출석을 한다든가 하는 것이 없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회당장이든, 혈루병의 여인이든 둘 다 예수님께 소망을 두었고,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음서는 이 두 사람 모두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오늘의 복음서는 공통점도 연관성도 없는 이 두 사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을까요?
이 두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의 복음서의 말씀에는 먼저 회당장이 등장합니다.
그 회당장의 이름은 야이로이고, 야이로에게는 어린 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딸은 지금 죽게 될 정도로 큰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당장은 예수님 앞으로 와서 엎드려 간곡히 구합니다.
23절의 말씀입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이 말은 들은 예수님은 회당장과 함께 회당장의 집으로 가십니다.
어린이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회당장이라는 사람은 말 그대로 회당의 장입니다.
회당을 관리하고, 성경 말씀을 준비하고, 설교자를 배정하고, 회당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회당장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존경받는 계층이었습니다.
참고로 예수님 시대에는 팔레스틴 전역에 약 480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 나오는 회당장은 이 480개의 회당장 중 한 명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는 사람. 회당을 책임지고, 대표하는 사람.
그 회당장이 예수님 앞에 나와 엎드린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회당장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고, 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회당장 뒤를 따라 갔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는 뒤를 돌아보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옷에 손을 댄 것을 예수님께서 아신 것입니다.
30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은 어떤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서는 이 여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25~26절의 말씀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혈루증. 지금 병명으로 보자면 만성 자궁 출혈증 정도로 볼 수 있겠지요.
규칙적이지 않은 생리로 이 여성은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많은 의사를 만나보았지만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고, 더 큰 문제는 이 혈루증이 이 여인의 재산도, 이 여인의 사회 생활의 자유도 빼앗아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레위기 15장에는 이 혈루증에 대해서 쓰여져 있는데, 이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부정하기에 격리를 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았다는 것은, 12년 동안이나 격리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고, 재산도 다 써버렸고, 12년 동안 격리를 당한 여인.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 깃을 만진 것입니다.
자신이 낫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여인이 앓았던 혈루증은 격리를 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격리를 요한다는 것은 전염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고, 이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율법은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만진 모든 것은 부정해 진다고 말합니다.
즉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졌음으로 예수님은 부정해 진 것입니다.
회당장의 부탁으로 회당장의 딸을 고치러 집에 가던 예수님이 부정해지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옷 깃을 만졌고, 자신의 옷 깃을 만진 사람이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만일 제가 예수님이었다면, 이 일을 감추었을 것 같습니다.
뭐 굳이 감출 필요도 없습니다.
모른 척만 하면 다 그냥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예수님만이 누군가가 자신의 옷 깃을 만졌고, 이로 인해 능력이 빠져 나갔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십니다.
누가 자신의 옷 깃을 만졌는지 예수님은 확인하셨고, 결국 이 부정한 여인을 사람들 앞으로 불러 오십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보는 그 자리에서 여자는 모든 자초지종을 말합니다.
33절의 말씀입니다.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굳이 이 일을 끄집어 내어 문제를 삼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예수님은 회당장의 집에 죽을 병을 고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바쁜 길이었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의 기적을 보기 위해 따라 가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일 정도는 모른 척하셨어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 여인은 병 고침을 얻었을 것이고, 예수님은 회당장의 딸을 고침으로 더욱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이름을 알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 앞에 그 여인을 세우셨고, 모든 자초지종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수님이 부정해졌다는 것도 알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러한 것을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이 여인이 병에서 구원을 얻었다는 것과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대의를 내세우고 소의를 희생시키는 일들이 많습니다.
큰 일을 중요시 여기고, 작은 일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퍼져 있고 만연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교회 조차도 큰 교회, 큰 교단을 선호합니다.
목사들은 말씀보다는 학위를 위해 공부하고, 한 교회의 담임보다는 위원장, 총회장의 자리를 기뻐합니다.
모두가 큰 것, 큰 일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것보다는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를 돌아보셨습니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부정해진 자들을 먼저 살피셨습니다.
큰 일, 사람들의 이목이 주목되어 있는 일보다는 작은 자의 신음을 더 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시고 혈루증에 걸린 여인을 사람들 앞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 여인으로 인해 부정해졌다는 것이 알려질 수 있었음에도,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길이 더디게 될 수 있음에도, 예수께서는 이 여인을 그냥 지나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우리가 크리스찬이라면, 예수님의 제자라면, 우리 역시도 작은 자들, 작은 일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작은 자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고 해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이라고 해도,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도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찬의 자세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자초지종을 말한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4절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혈루병 여인은 12년간의 격리에서 사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병고침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소외 당한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작은 자도, 작은 일도 중시 여기는 예수님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문제 하나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 가에서 시간을 너무 끄는 바람에 회당장의 딸이 죽게 된 것입니다.
회당장의 집에서 온 사람은 딸이 죽었다는 것을 회당장에게 알립니다.
참 비통한 일입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리면서까지 간절히 빌었는데, 딸이 그만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회당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36절)”
그리고 예수께서는 회당장의 집으로 가셔서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달리다”는 어린 소녀를 뜻하는 것이고 “굼”은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어린 소녀여~~ 일어나라!!”
이 예수님의 한 마디로 죽은 회당장의 딸은 일어나 걷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혈루병에 걸린 사람과 접촉하는 것도 부정한 일이지만, 죽은 사람을 만지는 것도 부정한 일입니다.
민수기 19장을 보면 죽은 사람을 만지는 것을 더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혈루병에 걸린 사람과 접촉했을 뿐만 아니라, 죽은 아이까지도 만지셨습니다.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입니다.
부정해질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정해지지도 감염되지도 않으셨습니다.
혈루병 여인의 손이 예수님의 옷 깃에 닿자 혈루병이 깨끗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아이의 손을 만지자 죽은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어떤 부정한 것도 예수님을 부정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부정한 것이 예수님에게 닿자 정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의 신앙에 대해 의심을 합니다.
과연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
작은 자를 살피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인가?
혹시 이러한 일이 우리를 뒤쳐지게 또는 부정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합니다.
맞습니다. 적어도 세상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작은 자를 살피고, 이 일로 인해 뒤쳐지고 부정해지더라도 괜찮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하게 하실 것입니다.
작은 자에게 관심을 두고, 작은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길 바랍니다.
우리들의 이 신념과 신앙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막5:21~43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꽤 깁니다.
일반적으로 매주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음서는 한 사건 정도만을 다루고 있는 반면, 오늘의 복음서는 두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건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아이를 살리신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혈루병 여인의 병을 고치신 사건입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이나 연관성은 없습니다.
회당장과 혈루병 여인이 지인이라든가, 회당장의 아이와 여인의 병이 같은 병이라든가, 같은 회당에 출석을 한다든가 하는 것이 없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회당장이든, 혈루병의 여인이든 둘 다 예수님께 소망을 두었고,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음서는 이 두 사람 모두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오늘의 복음서는 공통점도 연관성도 없는 이 두 사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을까요?
이 두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의 복음서의 말씀에는 먼저 회당장이 등장합니다.
그 회당장의 이름은 야이로이고, 야이로에게는 어린 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딸은 지금 죽게 될 정도로 큰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당장은 예수님 앞으로 와서 엎드려 간곡히 구합니다.
23절의 말씀입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이 말은 들은 예수님은 회당장과 함께 회당장의 집으로 가십니다.
어린이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회당장이라는 사람은 말 그대로 회당의 장입니다.
회당을 관리하고, 성경 말씀을 준비하고, 설교자를 배정하고, 회당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회당장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존경받는 계층이었습니다.
참고로 예수님 시대에는 팔레스틴 전역에 약 480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 나오는 회당장은 이 480개의 회당장 중 한 명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는 사람. 회당을 책임지고, 대표하는 사람.
그 회당장이 예수님 앞에 나와 엎드린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회당장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고, 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회당장 뒤를 따라 갔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는 뒤를 돌아보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옷에 손을 댄 것을 예수님께서 아신 것입니다.
30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은 어떤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서는 이 여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25~26절의 말씀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혈루증. 지금 병명으로 보자면 만성 자궁 출혈증 정도로 볼 수 있겠지요.
규칙적이지 않은 생리로 이 여성은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많은 의사를 만나보았지만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고, 더 큰 문제는 이 혈루증이 이 여인의 재산도, 이 여인의 사회 생활의 자유도 빼앗아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레위기 15장에는 이 혈루증에 대해서 쓰여져 있는데, 이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부정하기에 격리를 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았다는 것은, 12년 동안이나 격리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고, 재산도 다 써버렸고, 12년 동안 격리를 당한 여인.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 깃을 만진 것입니다.
자신이 낫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여인이 앓았던 혈루증은 격리를 요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격리를 요한다는 것은 전염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고, 이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율법은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만진 모든 것은 부정해 진다고 말합니다.
즉 이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졌음으로 예수님은 부정해 진 것입니다.
회당장의 부탁으로 회당장의 딸을 고치러 집에 가던 예수님이 부정해지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옷 깃을 만졌고, 자신의 옷 깃을 만진 사람이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던 것입니다.
만일 제가 예수님이었다면, 이 일을 감추었을 것 같습니다.
뭐 굳이 감출 필요도 없습니다.
모른 척만 하면 다 그냥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예수님만이 누군가가 자신의 옷 깃을 만졌고, 이로 인해 능력이 빠져 나갔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십니다.
누가 자신의 옷 깃을 만졌는지 예수님은 확인하셨고, 결국 이 부정한 여인을 사람들 앞으로 불러 오십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보는 그 자리에서 여자는 모든 자초지종을 말합니다.
33절의 말씀입니다.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굳이 이 일을 끄집어 내어 문제를 삼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예수님은 회당장의 집에 죽을 병을 고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바쁜 길이었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의 기적을 보기 위해 따라 가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일 정도는 모른 척하셨어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 여인은 병 고침을 얻었을 것이고, 예수님은 회당장의 딸을 고침으로 더욱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이름을 알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가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 앞에 그 여인을 세우셨고, 모든 자초지종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수님이 부정해졌다는 것도 알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러한 것을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이 여인이 병에서 구원을 얻었다는 것과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대의를 내세우고 소의를 희생시키는 일들이 많습니다.
큰 일을 중요시 여기고, 작은 일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퍼져 있고 만연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교회 조차도 큰 교회, 큰 교단을 선호합니다.
목사들은 말씀보다는 학위를 위해 공부하고, 한 교회의 담임보다는 위원장, 총회장의 자리를 기뻐합니다.
모두가 큰 것, 큰 일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것보다는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를 돌아보셨습니다.
세상에서 소외되고 부정해진 자들을 먼저 살피셨습니다.
큰 일, 사람들의 이목이 주목되어 있는 일보다는 작은 자의 신음을 더 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시고 혈루증에 걸린 여인을 사람들 앞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 여인으로 인해 부정해졌다는 것이 알려질 수 있었음에도,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길이 더디게 될 수 있음에도, 예수께서는 이 여인을 그냥 지나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우리가 크리스찬이라면, 예수님의 제자라면, 우리 역시도 작은 자들, 작은 일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작은 자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고 해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이라고 해도,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도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찬의 자세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자초지종을 말한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4절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혈루병 여인은 12년간의 격리에서 사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병고침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소외 당한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작은 자도, 작은 일도 중시 여기는 예수님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문제 하나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 가에서 시간을 너무 끄는 바람에 회당장의 딸이 죽게 된 것입니다.
회당장의 집에서 온 사람은 딸이 죽었다는 것을 회당장에게 알립니다.
참 비통한 일입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리면서까지 간절히 빌었는데, 딸이 그만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회당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36절)”
그리고 예수께서는 회당장의 집으로 가셔서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달리다”는 어린 소녀를 뜻하는 것이고 “굼”은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어린 소녀여~~ 일어나라!!”
이 예수님의 한 마디로 죽은 회당장의 딸은 일어나 걷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혈루병에 걸린 사람과 접촉하는 것도 부정한 일이지만, 죽은 사람을 만지는 것도 부정한 일입니다.
민수기 19장을 보면 죽은 사람을 만지는 것을 더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혈루병에 걸린 사람과 접촉했을 뿐만 아니라, 죽은 아이까지도 만지셨습니다.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입니다.
부정해질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정해지지도 감염되지도 않으셨습니다.
혈루병 여인의 손이 예수님의 옷 깃에 닿자 혈루병이 깨끗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아이의 손을 만지자 죽은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어떤 부정한 것도 예수님을 부정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부정한 것이 예수님에게 닿자 정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의 신앙에 대해 의심을 합니다.
과연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
작은 자를 살피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인가?
혹시 이러한 일이 우리를 뒤쳐지게 또는 부정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합니다.
맞습니다. 적어도 세상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작은 자를 살피고, 이 일로 인해 뒤쳐지고 부정해지더라도 괜찮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하게 하실 것입니다.
작은 자에게 관심을 두고, 작은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길 바랍니다.
우리들의 이 신념과 신앙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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