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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맛을 잃지 않는 신앙인(눅14:25~35)-2025.9.7.성령강림일 후 열셋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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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임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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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kkACg24UNsQ?si=ckVMvKb6_g4aREjK


(본문 중)


맹자의 이야기도 유명하지만, 맹자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맹모삼천지교가 있지요.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외에도 또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맹모단기지교라고 합니다.

맹자를 가르치기 위해 베틀의 실을 끊은 이야기입니다.

 

세 번이나 이사를 하면서 교육을 받던 맹자는 어느 덧 나이가 들어 집을 떠나 학문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집을 떠난 지 오래 되자, 맹자는 향수병에 걸립니다.

어머니도 보고 싶고, 고향도 그립고 해서, 기별도 없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운 마음에 맹자는 문 밖에서부터 어머니를 불렀지만, 어머니는 답을 하지 않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와 보니 어머니는 베를 짜고 있었고, 돌아온 맹자를 보았지만 별 반가운 기색 없이 맹자에게 묻습니다.

집에 돌아오다니 어쩐 일이냐?”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돌아왔습니다.”

학문은 다 마치었느냐?”

아직 다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맹자의 대답을 듣던 어머니는 갑자기 베틀의 날실을 잘라 버렸습니다.

맹자가 놀라서 묻습니다.

어머니 어찌 잘 짜신 베를 자르셨습니까?”

어머니는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맹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학문을 중단하는 것은 마치 내가 애써서 짜던 이 베를 끊는 것과 같다. 학문을 닦지 않은 사람은 남의 심부름꾼으로 뛰어다녀야 하고 해를 피할 길이 없다.”

이런 어머니의 단호함을 본 맹자는 다시 학문을 닦기 위해 돌아갔고, 후에는 공자와 함께 유학의 최고봉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참 대단한 어머니지요?

저라면 그렇게 못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찾아온 자식의 마음도 알 것 같고, 그 동안 자식을 보지 못해 그리움도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맹자의 어머니는 단호했습니다.

맹자를 훌륭한 학자로 키우기 위해, 잠깐의 그리움, 사사로운 정을 끊은 것입니다.

 

저는 이 맹자의 어머니의 마음과 오늘의 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복음서에서 자신을 쫓는 사람들에게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26~27절의 말씀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사람들은 예수님을 특별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뭔가 해 낼 것 같다, 예수님이라면 우리의 힘든 상황을 해결해 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랐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매우 거셌습니다.

자신의 제자가 되려면 가족과 자기 자신까지도 미워해라!! 자기 십자가를 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특히 유대인에게 가족은 매우 중요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한 약속이 혈연으로 이어지고, 가족에게서 율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히브리어로 을 뜻하는 바이트는 하나님의 성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가족이 사는 집은 그저 주거 공간이 아니라 신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부모는 성경(토라)을 가르치고, 자녀는 그 가르침에 순종합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을 미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의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라고도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십자가의 의미는 지금과 달랐습니다.

십자가는 사형틀이었습니다.

그것도 공개 처형을 당하는 악명 높은 법정 최고형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군대는 자신들의 잔혹함을 알리기 위해, 자신들에게 반역했던 나라를 정복한 뒤, 포로들을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십자가를 보면서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상황에 맞춰서 말한다면, 교수형 목줄을 목에 매라는 말과 같습니다.

신성한 가족을 미워하고, 스스로를 미워하고, 교수형 목줄을 매달고 나, 예수를 따르라!!”

이 말씀이 얼마나 강하고 과격한 말씀입니까!!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은 받아들이기도, 이해하기도 힘든 말씀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어느 상황에서 나온 말씀인지 안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었고, 예수님도 이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뒤를 쫓는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게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해서 뭔가 해 줄 것 같다는 기대, 유대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워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쫓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 제자가 되려면, 너희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가족 공동체를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 만을 위해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러 가시기 때문에, 너희들도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생각도 없으면서,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뒤를 쫓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강하고 과격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깨우치기 위해 짜던 베를 끊고 강하게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의 이기적인 생각, 막연한 생각들이 깨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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