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혜와 사랑이 답입니다(눅14:1~14)-2025.8.31.성령강림일 후 열두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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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Zsk94X5lZHI?si=JKwgvzyLGEJzpjRi
(본문 중)
예수님 시대에는 소위 안식일 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법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십계명을 따르는 법이었습니다.
원래 이 안식일 법은 사람들의 휴식을 위해 주어진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이 십계명이 강조되면서, 사람들은 이 법의 의미를 잊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법을 지키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이를 환영하고 강조했던 사람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39가지의 행동을 금지시켰습니다.
이는 미쉬나라는 책에서 나온 것인데, 미쉬나는 랍비들에 의해 말로 이어져 내려온 가르침을 엮어서 만든 책입니다.
모두 율법에 관련된 것이고, 율법의 적용에 대해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미쉬나의 2번째 책, ‘모에드’에 이 안식일에 대한 율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금지사항이 39가지나 됩니다.
이 39가지의 금지사항이 말하는 것은 평일에 하는 일이 안식일까지 이어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씨뿌리기, 물주기, 추수하기와 같은 일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음식을 해서도 안 되고, 세탁을 해서도 안 되고, 망치질을 해서도 안 됩니다.
심지어 글자를 두 글자 이상 쓰는 것도 안 된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상식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 미쉬나를 적극 따랐습니다.
39가지의 행동을 금했고, 이를 지켜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사람을 위해 주어진 안식일은 사람들을 구속하는 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필요한 일이다 하더라도 안식일에는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안식일에 예수님은 한 바리새인의 지도자의 집에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수종병에 걸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수종병은 심장이나 신장의 이상으로 몸에 물이 차는 병이라고 합니다.
바리새인의 집에 수종병 환자가 왜 있었는지는 쓰여져 있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복음서 1절에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는 말이 쓰여져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수종병 환자를 데려다 놓은 것 같습니다.
이를 본 예수께서는 모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묻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그러나 이 물음에 누구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게 하기 위한 덫이기 때문입니다.
혹여 잘못 대답이라도 한다면, 자신들의 계획이 무산될 수도 있기에, 그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수종병 든 사람을 고치십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신 것이고, 분명 안식일 법을 어기셨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그들의 덫 안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덫 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율법을 지키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는 사람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 법을 어기게 하기 위해 덫을 놓은 사람들은 이 말씀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율법을 어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법은 법일 뿐입니다.
법은 세상의 질서를 위해 존재하는 것뿐이지, 법이 사람 위에 있어서도 안 되고, 사람을 구속해서도 안 됩니다.
인치가 없는 법치만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정이 통하지 않는 법은 사람에게 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 같은 사람이 계속 나오게 되는 환경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최고의 신앙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것 만이 하나님의 뜻을 잘 따르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강조했고, 그것으로 자신들을 뽐냈으며,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안식일 법을 지키지 못하도록 덫을 놓았습니다.
모두가 자신들의 신앙을 자랑하기 위해서 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랬던 그들이 초대받은 자리에서는 전혀 신앙인 답지 않게 굽니다.
오늘의 복음서 7절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자신들이 참 신앙인이라고 자랑하던 그들입니다.
예수님보다 자신들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들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막상 초대받은 자리에서는 전혀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서로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 경쟁합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혼인 잔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부를 때까지 가장 낮은 자리에 앉지 않으면, 높은 사람들이 올 때, 네 자리를 뺏기고 창피를 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에게 자기 신앙을 자랑하고, 높은 자리를 탐하는 자들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주어질 것은 영광이 아닙니다.
창피함입니다.
혼인 잔치,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자기 신앙을 자랑하고, 남보다 자신을 낫게 여기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덫을 놓는 사람들은 창피를 당할 것입니다.
뻘건 얼굴로 맨 뒤로 가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낫습니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합당한 자리로 부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일로 모든 이들의 존중과 영광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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