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분쟁을 일으키시는 성령(눅12:49~56)-2025.8.17.성령강림일 후 열째 주일 설교
작성자 정보
- 담임목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218 조회
- 목록
본문
*이번 주 설교는 녹화상의 문제로 인해 영상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설교 주제는 조금 무겁습니다.
교회가 주로 말해 왔던 사랑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있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불은 분쟁과 분열을 말합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려고 해도, 이 불을 통해 우리들은 나뉘어지고, 서로 분쟁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가족들 간에서도 분쟁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분쟁, 분쟁 가운데 계신 예수님.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나누기 전에 잠깐 우리 나라 근현대사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나라는 분단 국가 입니다.
1950년 남북 전쟁으로 인해 한국은 분열 되었습니다.
약 3년간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분열과 분쟁은 계속 있었습니다.
북한은 계속해서 남한을 도발했고, 남한에서는 민주주의 수호라는 이름으로 공산주의자들을 검거했습니다.
그리고 1961년, 한국에서는 군부의 쿠데타가 일어나 군인들이 정권을 잡게 됩니다.
그들은 공산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민심을 샀습니다.
이 군부 정권은 26년간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군부 정권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억압했습니다.
군부의 독재를 위해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가기도 했습니다.
이 때 가장 많이 등장했던 말은 빨갱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당시의 군부 정권은 민주화 운동을 하는 이들을 향해 평화로운 나라에 분열을 조장하는 공산주의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신학생과 목사, 신부와 사제 같은 이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적지 않은 교회와 성당은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수배된 사람들을 숨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교회는 군부의 독재를 반대했고, 민주화를 지지했습니다.
군부의 사람들은 또는 군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런 교회를 보면서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분열과 분쟁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분열과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모임.
그것이 당시 한국 교회의 모습 중 하나였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서의 분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분명 분쟁이라는 것은 그리 좋은 느낌을 주는 단어는 아닙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 분쟁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3장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보고 마음 속으로 “혹시 메시아가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세례 요한은 메시아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X2
세례 요한의 예언대로 예수께서는 성령에 이끄심에 따라 공생애를 보내셨습니다.
많은 이들을 고치셨고, 회복시키셨고,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불의 차례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불을 주실 것입니다.
물론 이 불로 인해 우리 안에 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불의 목적은 평화 가운데 분쟁을 일으키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분쟁하게 해서 이 땅을 뒤집어 놓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이고, 우리가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목적은 분쟁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불을 던지실 것입니다.
깨닫게 하고, 알게 하기 위해, 2000년전에도 지금도 자신의 백성들에게 불을 던지십니다.
그리고 이 불이, 이 진리가 우리에게 붙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세상이 말하는 평화에 속지 않도록 우리에게 불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 51절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여기서 화평이 아닌 분쟁을 주신다는 것은 거짓 화평을 분쟁하게 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에 살면서 “이것이 평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분쟁을 일으키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평화를 주실 생각이 없으십니다.
진리를 기만하는 평화,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 평화는 무너져야 합니다.
그들이 볼 때는 평화라 할지라도 그런 평화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루터교회를 한 번 봅시다.
우리는 루터교회의 성도로서 루터의 종교 개혁 정신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 개혁 정신을 신앙의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 개혁 당시의 루터는 어땠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루터를 지지하고 응원했을까요?
종교 개혁을 환영했을까요?
루터는 기존의 교회로부터 분쟁하는 자, 분열을 조장하는 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몇 번이나 주교로부터, 또 교황으로부터 자중하라는 경고의 말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스승과 동료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루터 역시도 스스로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이 분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존 교회로부터 파문 당했습니다.
시편 80편 12절과 13절에는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라는 말씀이 쓰여져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를 “주님의 포도밭을 파헤친 멧돼지”라고 비난하고 파문했습니다.
우리의 관점으로 볼 때는 종교 개혁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관점으로는 분쟁이고 분열이었던 것입니다.
루터는 그저 교회를 파헤친 멧돼지였습니다.
평화스러운 교회에 분쟁을 일으킨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분쟁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혁하게 하셨고, 지금 우리와 같은 개신교회가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루터만 그럴까요?
장로교회를 시작한 칼뱅과 존 녹스, 스위스의 쯔빙글리, 감리교회의 존 웨슬리와 같은 사람들도 기존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분쟁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분쟁을 통해 자신의 백성을 이끄셨습니다.
개혁하게 하셨고, 변화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다는 분쟁도 이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진리와 생명을 위해 주신 분쟁인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분쟁에도 아픔은 따릅니다.
루터가 자신의 스승과 동료에게 외면당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분쟁에도 아픔은 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시대의 유대교는 지금 우리의 종교와는 달랐습니다.
당시의 유대교는 종교 뿐만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을 의미했습니다.
즉, 유대인으로 태어나면 유대교를 따르고 믿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유대교는 유대인들의 정신과 신념과 신앙,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코 유대교를 멀리할 수 없었습니다.
율법을 어기면 유대 사회로부터 벌을 받았습니다.
유대 사회의 의결 기구였던 산헤드린 의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쟁을 일으킨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가족 간에서도 마찰이 생기고, 쫓겨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가족 간에도 분쟁이 있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인 무리들을 향해 시대를 분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상을 보면서 비가 올지, 더울지 아는 것처럼, 자신을 보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실 지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율법의 시대는 계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새 시대를 여실 것입니다.
새로운 약속의 시대, 신약의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비록 분쟁이 있겠지만,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겠지만, 하나님은 그 분쟁을 통해 새 시대를 백성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새 시대는 유대인들에게만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분쟁을 통해 모든 사람이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분쟁을 이 땅에 주신 이유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와 교단에서, 또 우리 가정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새 시대를 주실 것입니다.
거짓 평화를 없애고, 하나님의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분쟁이 분쟁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일어난 분쟁은 반드시 변화와 회복을 가져옵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 우리에게도 변화와 회복은 반드시 옵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 가운데서 분쟁을 일으키십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시기에, 새로운 시대를 계획하고 계시기에 성령은 우리 가운데서 분쟁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힘내시길 바랍니다.
분쟁 가운데 있더라도 힘내십시오.
그 분쟁의 중심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쟁을 통해 변화하고 회복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이를 믿고 분쟁을 잘 이겨내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