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한 가지만이라도 족합니다(눅10:38~42)-2025.7.20.성령강림일 후 여섯째 주일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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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ubHymegasHY?si=vVgzK3JAv5W6zCg8
(본문 중)
오늘의 복음서 설교를 듣기 전에, 이런 말씀이 왜 복음서에 쓰여져 있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교회에서 구제하는 일에 문제가 생깁니다.
다른 지역의 유대인 과부들이 본토의 유대인 과부들보다 구호 음식들을 잘 챙겨 받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12사도들은 교회 성도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행6:2).”
여기서 말하는 접대는 소외된 이들에게 구호 음식을 나누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문제는 접대, 구제를 위해 7명의 집사를 세우는 것으로 잘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의 말에 따르면 잠시나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사람들을 접대하는 일로 인해 방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고질적인 문제는 바로 이것, 지나친 접대로 인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한 두 교회에서 일어난 일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늘 접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접대하는 것, 이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때로는 말씀 전하는 것이 방해 받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불만을 사기도 한다면, 이 좋은 일이 의미 없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의 복음서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넣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이 가장 좋고, 접대는 그 다음이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도가 지나친다면 그 의미가 무색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를 봅시다.
오늘의 복음서는 마르다가 예수님과 그 일행들을 영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베다니를 들리셨고,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를 기뻐한 마르다는 자신의 집에 예수님을 초대했습니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깁니다.
자신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과 일행들을 접대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마르다는 불평합니다.
접대로 인해 준비할 것은 많은 데, 자신 혼자 하려니 화가 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40절).”
처음에 마르다는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사역이 더 효과적으로 진행되길 원했고, 이를 위해 자신의 집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분주함으로 인해 그 기쁜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위한 섬김이 곧 불평으로 바뀌었고,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동생을 보며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예수님께 나아가 동생을 보내 접대를 준비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접대로 인해 말씀이 방해 받은 것은 물론, 접대의 목적도 퇴색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마르다를 타이르고 달래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이는 꾸짖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시키기 위해 친근하게 부르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바울도 주님께서 이렇게 두 번씩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말씀이 중요하니 접대 준비 그만하고 와서 말씀 들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접대로 인해 염려하고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니 기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르다 자신이 접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마리아가 택한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게 여겨 주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말씀과 봉사는 마치 한 쌍의 수레 바퀴와 같습니다.
한 쪽이 없으면 제대로 굴러가지 못합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둘 다 교회를 세우는 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둘은 교회 안에서, 우리 신앙 안에서 균등하게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교회, 건강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는 7집사를 세워 구제를 맡기고, 사도들은 말씀 전하는 일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넣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한 것입니다.
말씀도 봉사도 주님이 보실 때는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쪽도 우등하거나 열등하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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