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눅10:25~37)-2025.7.13.성령강림절 후 다섯째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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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cXzwNbgUgKg?si=JywlmUh8g0xfgl_W
(본문 중)
오늘의 복음서는 한 율법 교사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율법 교사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영생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오늘의 복음서 25절의 말씀입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질문에 예수님은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율법 교사가 잘 아는 것을 대답하게 하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이 질문에 율법 교사는 신명기 6장의 말씀과 레위기 19장의 말씀으로 답을 합니다.
그것이 27절의 말씀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나이다”
이 율법 교사의 답은 완벽했습니다.
율법의 기초가 되는 십계명을 크게 둘로 나누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계명은 총 10가지의 계명이지만, 그 계명은 하나의 돌판이 아니라 두 개의 돌판에 나뉘어 써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나”에 관한 계명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이웃”에 관한 계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계명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10가지를 전부 다 지켜야 하지만, 사랑을 하면 자동적으로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 교사가 말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로 완벽한 대답이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이웃은 여러 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디 까지를 내 이웃으로 삼아야 하는지, 이 또한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도 내 이웃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율법 학자들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내 이웃이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같은 민족, 같은 유대인들이 내 이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확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라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여러 나라와 여러 문화권에 흩어져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학자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계속되었고, 이웃의 범위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어 놓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복음서의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여기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우리가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정말 여러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일일이 다 다루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여러분들도 졸리실 것 같아서 조금씩만 다루어 보겠습니다.
먼저 강도 만난 사람을 봅시다.
이 사람이 강도를 어디서 만납니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만납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간다는 것은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일 것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예배 드리고 집에 돌아가다가 강도를 만난 것입니다.
교회에서 은혜 충만히 받고 집에 가는데, 강도를 만났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또 강도는 만나지 않더라도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신앙 생활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좋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삶에 폭풍이 몰아칠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신앙 때문에 어려운 일에 맞닥뜨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힘든 일이 있다고 해서 실족하거나 신앙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복과 평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은 우리에게 어려움을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끝까지 견뎌내게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 가운데서도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해서 신앙을 지킨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신앙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들을 잘 이겨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두번째로 제사장과 레위인을 봅시다.
제사장도 강도 만난 사람과 같은 길을 내려 갑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것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많은 제사장들이 여리고에 모여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제사장이 여리고를 향해 내려 간다는 것은 자신의 일과, 성전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레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위인은 제사장 보다 조금 낮지만,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은 유대 사회에서는 특권층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레위인도 같은 길을 갔기 때문에, 자신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도 레위인도 강도 만난 사람을 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방금 전까지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나온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피해서 도망가 버립니다.
아마도 강도가 주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강도 만난 사람을 죽었다고 오해해서 그냥 간 것이다고 말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시체는 부정한 것이고 만져서는 안 됩니다.
만지는 사람은 부정하게 되요.
그래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시체로 오해했고, 자신들이 성전에서 일하기 때문에 부정하게 될까봐 그냥 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도 일리가 있지만,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제사장이라 할 지라도 장례를 치뤄 줄 사람이 없으면 시체에 손을 대도 된다고 합니다.
레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사두개인들은 제사장이든 레위인이든 누구든 눈 앞에 장례 치룰 사람이 있다면 시체를 만져서라도 장례를 치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체로 오해해서 그냥 지나쳐 갔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됩니다.
그냥 강도가 무서워서 도망친 것입니다.
성전에 있는 사람, 하나님 때문에 특권층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마리아 사람을 보겠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좀 전에 어린이 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유대인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하거나 성전을 방문했던 사람도 아닙니다.
33절에 보면 이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하는 중”이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냥 여행객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포도주와 기름으로 상처를 싸맸고, 주막으로 데려가 돌봐 줍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데나리온 둘을 내며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아 달라고 주인에게 부탁하고, 돈이 더 들면 돌아와서 갚겠다고 말합니다.
강도 만난 사람과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심지어 자신은 사마리아 사람, 강도 만난 사람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풉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다 하시고 나서 율법 교사에게 묻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답은 정해져 있지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하지만 율법 교사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라고 답을 하지 않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을 입에 올리기도 싫은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예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고 묻는 율법 교사에게 이웃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율법을 지키는 사람, 유대인만을 이웃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이들이 우리의 이웃이고, 그들의 형편을 살피고 그들의 어려움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우리 교회, 내가 아는 지인들만 사랑하는 것은 이웃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이 세상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려운 자, 힘든 자, 낙심한 자, 우는 자들의 이웃이 되어 주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 머무르지 말고, 세상으로 나갑시다.
우리들의 이웃을 사랑하고, 친절한 말로 대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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