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2025.4.6.사순절 다섯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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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촬영이 잘 되지 않아 설교 원고로 대체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주 제가 속해 있는 예배분과위원회 회의가 천안에서 있어서, 천안에 다녀왔습니다.
천안에 가보니 해가 잘 드는 이 곳 저 곳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즈음이면 천안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겠네요.
그리고 여기 양주에서도 벚꽃이 피고 있습니다.
완연한 봄이 왔다는 증거를 꽃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옛 말에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지요.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여러 모로 쓰입니다.
젊음의 아름다움은 잠깐이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한 번 흥한 것은 쇠하기 마련이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종교,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흥함이 있으면 쇠함이 있습니다.
활짝 핀 꽃이 오래 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과거 예루살렘 성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성벽과 성전을 재건한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이며 율법학자였던 에스라가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 공동체로 똘똘 뭉쳤습니다.
그리고 온갖 어려움과 싸웠습니다.
이웃 나라의 침략과 방해로부터, 강대국의 횡포로부터, 이방 나라의 관습으로부터, 헬라 문화의 유혹으로부터 자신들의 신앙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대는 한 때 약 80년간의 독립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꽃이 활짝 피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활짝 핀 꽃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독립의 중심에 있었던 성전을 두고 여러 다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왕좌를 둘러싼 후계자들의 싸움은 로마를 유대 안으로 불러들이게 했습니다.
두 후계자가 당시 강대국이었던 로마에 중재 요청을 했기 때문입니다.
중재를 구실로 삼아서 들어온 로마는 후계자 중 한 명인 히르카노스 2세를 허수아비 대제사장으로 세우고, 아주 손 쉽게 유대를 로마의 속국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기원전 37년, 우리가 잘 아는 헤롯 왕이 로마의 힘을 입어 유대를 포함한 가나안 땅의 왕이 됩니다.
헤롯 왕 잘 아시지요?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베들레헴의 2살 밑의 아이들을 다 죽인 그 잔혹한 왕.
그 왕이 로마의 힘으로 유대의 왕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독립 왕조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됩니다.
왕 위에 오른 헤롯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있었습니다.
바로 정통성이라는 꼬리표였습니다.
헤롯은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롯은 유대의 독립 왕조의 공주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외부 공사에 약 10년, 내부공사에 약 7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이 성전의 공사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철저하게 정치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성전은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의 만남의 장소로 지어진 성전이었지만, 사람들은 성전을 정치와 권력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성전의 겉 모습은 기존의 것보다 더 크고, 더 멋있고, 더 웅장해졌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본질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백성들을 위한 성전이 아니라, 백성 위에 군림하는 성전.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아니라, 정치와 권력과 돈을 탐하는 곳.
성전은 이렇게 타락해 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메시아로서 이 성전에 방문하셨을 때, 성전에서 장사하는 상을 둘러 엎으시고, 장사아치들을 다 내쫓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 성전이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복음서 앞 장인 19장에 이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것들을 다 치우시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기 시작합니다.
오늘의 복음서는 이러한 배경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성전에 모인 사람들에게 설교하신 것입니다.
어린이 설교에서 오늘의 복음서의 내용을 다 말씀 드렸으니, 내용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오늘의 복음서의 포도원은 성전을 비유한 것입니다.
소출은 성전의 목적과 제사,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말하는 것입니다.
농부들은 정치와 권력을 위해 성전을 탐하는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을, 종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들을 비유합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을,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회복시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보내셨습니다.
때로는 선지자를, 때로는 정직한 제사장과 율법학자를, 때로는 전쟁의 용사를, 때로는 낙타 털 옷을 입고 있는 광야의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이로 인해 성전에 꽃이 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꽃은 오래가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전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왔습니다.
하지만, 농부들, 성전을 탐하는 자들은 그 사랑하는 아들마저 죽이기 위해 노리고 있습니다.
성전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 하나님의 것을 취하기 위해서 상속자마저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취하려는 욕심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일입니다.
인류 최초의 사람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것을 취하려 하다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는 뱀의 유혹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것을 취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인류 최초의 죄가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려 했던 아담과 하와, 그리고 성전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하나님처럼 되려 하는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
이 둘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저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듯이,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성전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서 16절의 말씀처럼 주인이 돌아오면 농부들은 진멸되고 포도원은 다른 이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탐했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일련의 여러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것을 탐하는 사람들, 또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정치를 위해 사용하고, 자식에게 세습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교회 뿐만이 아니지요.
회사도 그렇고, 군대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이런 일은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서의 포도원이라는 것은… 단순히 성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욕심이 점철된 곳, 욕심이 가득찬 곳이 포도원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고, 나의 자랑이 되기를 바라는 곳이 포도원입니다.
그 곳은 내 직장이 될 수도 있고, 내 재산이 될 수 있습니다.
내 학벌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사회적인 위치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내 정치적인 색깔, 내가 주장하고 말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인생 전체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 내 자녀들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자랑거리, 육신의 정욕, 이생의 안목, 나의 생각과 주장들…
내 인생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것들…
이것이 우리들의 포도원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서는 그런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 자신의 뜻과 생각이 옳은 것 같습니다.
꽃이 활짝 피었고, 절대로 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열흘 붉은 꽃은 없습니다.
때가 되면 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포도원 역시도 주인의 뜻대로 얼마든지 다른 이들에게 주어질 수가 있습니다.
이 포도원의 말씀은 권력을 잡고,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자들을 향한 말씀만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말씀입니다.
자신을 위해 살고, 자신의 뜻과 의지가 옳다고 믿으며, 자신만을 위한 포도원을 일구는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자신을 옳다고 여겨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돌 취급하는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포도원의 주인은 누구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많은 종들과 자신의 상속자를 보내십니다.
그들이 포도원의 주인이 누구신지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오실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히 꽃이 피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고작 100년도 가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도 늘 주인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내 것인 것 같고, 내 포도원인 것 같지만,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인이 빌려준 포도원을 통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이고, 포도원의 상속자인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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