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9일 성령강림절 후 셋째 주일 어른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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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로 덕을 세우는 공동체
본문: 막3:20~35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우리 집 큰 아이는 한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런 저런 한국사에 대해 묻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한국사를 잘 모른다는 데에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국사 공부한 적이 없으니, 물어 오는 것에 다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큰 아들이 저에게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아빠, 아빠는 고구려가 왜 망했는지 알아?”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답을 찾을 수 없어 난감했지만, 대부분 나라가 망하는 것에는 내분과 분쟁이 있기에 “음… 내분 때문이 아닌가?” 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굉장히 잘 찍은 정답이었습니다.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외부의 문제 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와 외부의 문제가 한 데 얽혀서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점점 망해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이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최후에는 강대국의 침략이 있었지만, 원인은 내부의 분열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나뉘어지고, 서로 반목하고 질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진 나라가 분열이 되니, 이스라엘과 유다의 최후의 모습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이를 경고하고, 예레미야 같은 경우에는 눈물로 호소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경고하는 선지자들을 박해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남유다는 바벨로니아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리고 수 백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린 채로 살게 됩니다.
성경에 쓰여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나라를 빼앗겼던 유다가 잠시 독립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유다가 속해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셀레우코스라는 그리스계의 강대국의 속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셀레우코스의 박해가 심해지자, 유다는 그 박해에 반발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 누구도 유다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유다는 이 전쟁에서 승리를 합니다.
그리고 유다는 독립을 선언하고 약 100년 동안 독립 국가로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100년 후 유다 안에서는 정치적인 내분이 생겼고, 이 내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당시의 신생 강국이었던 로마를 나라 안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이에 대한 대가로 유다는 로마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되지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예수님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의 공동체의 흥망성쇠의 키는 내부에 있습니다.
내부가 탄탄하면 외부의 적이 들어와도 막아낼 수가 있고,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면 외부의 작은 침입에도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공동체든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내부가 튼튼하면 외부의 침입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박해를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유다가 독립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내부의 단합이 잘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면 작은 균열에도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필요한 것이 서로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단점은 가려주고, 장점은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 일원 중에 좋은 일이 생겼다든가, 그의 수고로 인해 교회에 좋은 결과가 있다면, 칭찬해 주고 축하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 교회와 일본 교회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양국 교회의 차이점을 몇 개 발견했는데, 그 중 하나가 칭찬과 치하에 대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안타깝게도 칭찬과 치하에 약한 편입니다.
반면 일본 교회는 칭찬과 치하를 잘합니다.
예를 든다면, 오늘 ㅇㅇㅇ 자매가 성서 봉독을 했습니다.
그러면 한국 교회에서는 “아… 오늘은 ㅇㅇㅇ 자매가 성서 봉독을 했네” 정도로 끝납니다.
그런데 일본 교회에서는 예배 후에 ㅇㅇㅇ 자매에게 가서 여러 칭찬과 치하의 말을 합니다.
여러분 성서 봉독에 어떤 칭찬과 치하의 말이 있을지 궁금하시죠?
별로 없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많습니다.
“오늘 성서 봉독을 참 잘했다” 이런 것은 기본입니다.
“바쁜 데도 불구하고 교회에 와서 성서 봉독으로 봉사를 하니 참 좋다” 라든가, “목소리가 근사하다” 라든가, “성서 봉독을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용기내 성서 봉독을 해줘서 감사하다” 라든가, “덕분에 성서 내용이 귓 속에 잘 들어왔다”라든가…
생각해 보면 참 많은 칭찬거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ㅇㅇㅇ 자매는 이런 칭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예배 끝나면 제가 이런 말 했다고 뭐라고 할 수도 있어요.
쑥쓰럽기도 하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칭찬받는 것도 익숙치 않고, 또 입에 발린 말 같기도 하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말들은 기억에 꽤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이런 칭찬과 치하의 말들이 사람을 세웁니다.
저도 일본 선교 기간 동안 이런 칭찬들을 많이 받았고, 아직도 이런 말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평범하게 예배 준비하고 설교를 해도,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칭찬을 하고 치하의 말을 했습니다.
예배를 위해 주보와 파워포인트를 만들고, 설교와 성만찬을 준비하는 일은 목사라면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면 일본 교회 사람들은 칭찬을 많이 해 주었어요.
설교가 좋았다, 예배 준비가 완벽했다, 예배에 은혜를 받았다, 심지어 성만찬을 받고 감동했다 등등… 별 것 아닌 일에 디테일 하게 칭찬하고 반응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 일본 선교가 외롭지만은 않았습니다.
모든 일본 교회나 모든 일본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요.
엄하고 칭찬에 인색한 교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일했던 교회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제가 두 교회를 담임하고 한 교회에 협동 목사로 있었는데, 적어도 이 세 교회의 사람들은 저에게 많은 칭찬과 치하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에서 칭찬을 잘 하는 목사가 되고 싶었는데… 제가 한국에 적응을 너무 잘한 것인지, 아니면 제가 칭찬에 인색해서 그런지, 칭찬의 말이 잘 나오지를 않습니다.
반성하고, 오늘부터는 상대방을 열심히 칭찬하고 세우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과 입술을 주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친척과 지인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요즘은 이 “미쳤다”는 말이 “대단하다”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들은 이 “미쳤다”라는 말은 제 정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저 폄하하고 비방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설명해내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예수님의 인기는 급 상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소문은 예수님의 친척들과 지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친척들과 지인들은 이를 부정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미쳤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폄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친척들 뒤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 즉 율법 학자들이 등장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고 합니다.
귀신 중에 왕 귀신이 들려서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립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분열과 분쟁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사탄은 사탄을 쫓아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24~26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내분과 분쟁은 공동체를 파괴시킵니다.
그것이 사탄의 공동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분쟁하면 어느 나라든, 어느 집이든, 어느 공동체든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이 사탄의 공동체에게만 향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공동체를 향한 말씀이고, 당시 유대를 향한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행한 예수님에게 미쳤다고 했고, 귀신의 왕의 힘을 입었다고도 했습니다.
이는 유대를 세우는 일이 될 수 없었고, 망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진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선지자들을 박해했던 것처럼, 유대도 예수님을 박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과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판단에는 맞지 않다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이러한 일들이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폄하하고, 비방하고, 꼬투리를 잡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신과 다르면 상대방에게 거침없이 분노합니다.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서로를 깎아 내립니다.
정치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분열의 영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가 어떻게 설 수 있을까요?
이런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분쟁하면 나라가 설 수 없고 집이 설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적어도 우리 양주 교회 사람들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의 한 일을 치하해야 합니다.
그 일이 내가 볼 때는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의 수고에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덕을 세우는 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박해가 있더라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서로 덕을 세우는 교회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서로 덕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에도 칭찬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양주교회는 개척 단계에 있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도 아니고, 큰 헌금도 아닙니다.
기초를 세우고 있는 단계이니, 이 기초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서로 덕을 세워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서로를 칭찬하고 위하며 하나가 되어가는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를 더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막3:20~35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우리 집 큰 아이는 한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런 저런 한국사에 대해 묻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한국사를 잘 모른다는 데에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국사 공부한 적이 없으니, 물어 오는 것에 다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큰 아들이 저에게 이렇게 물어왔습니다.
“아빠, 아빠는 고구려가 왜 망했는지 알아?”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답을 찾을 수 없어 난감했지만, 대부분 나라가 망하는 것에는 내분과 분쟁이 있기에 “음… 내분 때문이 아닌가?” 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굉장히 잘 찍은 정답이었습니다.
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외부의 문제 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와 외부의 문제가 한 데 얽혀서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점점 망해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이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최후에는 강대국의 침략이 있었지만, 원인은 내부의 분열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나뉘어지고, 서로 반목하고 질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진 나라가 분열이 되니, 이스라엘과 유다의 최후의 모습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이를 경고하고, 예레미야 같은 경우에는 눈물로 호소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경고하는 선지자들을 박해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남유다는 바벨로니아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리고 수 백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린 채로 살게 됩니다.
성경에 쓰여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나라를 빼앗겼던 유다가 잠시 독립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유다가 속해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셀레우코스라는 그리스계의 강대국의 속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셀레우코스의 박해가 심해지자, 유다는 그 박해에 반발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 누구도 유다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유다는 이 전쟁에서 승리를 합니다.
그리고 유다는 독립을 선언하고 약 100년 동안 독립 국가로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100년 후 유다 안에서는 정치적인 내분이 생겼고, 이 내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당시의 신생 강국이었던 로마를 나라 안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이에 대한 대가로 유다는 로마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되지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예수님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의 공동체의 흥망성쇠의 키는 내부에 있습니다.
내부가 탄탄하면 외부의 적이 들어와도 막아낼 수가 있고,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면 외부의 작은 침입에도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공동체든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내부가 튼튼하면 외부의 침입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박해를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유다가 독립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내부의 단합이 잘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면 작은 균열에도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필요한 것이 서로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를 세워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단점은 가려주고, 장점은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 일원 중에 좋은 일이 생겼다든가, 그의 수고로 인해 교회에 좋은 결과가 있다면, 칭찬해 주고 축하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 교회와 일본 교회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양국 교회의 차이점을 몇 개 발견했는데, 그 중 하나가 칭찬과 치하에 대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안타깝게도 칭찬과 치하에 약한 편입니다.
반면 일본 교회는 칭찬과 치하를 잘합니다.
예를 든다면, 오늘 ㅇㅇㅇ 자매가 성서 봉독을 했습니다.
그러면 한국 교회에서는 “아… 오늘은 ㅇㅇㅇ 자매가 성서 봉독을 했네” 정도로 끝납니다.
그런데 일본 교회에서는 예배 후에 ㅇㅇㅇ 자매에게 가서 여러 칭찬과 치하의 말을 합니다.
여러분 성서 봉독에 어떤 칭찬과 치하의 말이 있을지 궁금하시죠?
별로 없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많습니다.
“오늘 성서 봉독을 참 잘했다” 이런 것은 기본입니다.
“바쁜 데도 불구하고 교회에 와서 성서 봉독으로 봉사를 하니 참 좋다” 라든가, “목소리가 근사하다” 라든가, “성서 봉독을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용기내 성서 봉독을 해줘서 감사하다” 라든가, “덕분에 성서 내용이 귓 속에 잘 들어왔다”라든가…
생각해 보면 참 많은 칭찬거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ㅇㅇㅇ 자매는 이런 칭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예배 끝나면 제가 이런 말 했다고 뭐라고 할 수도 있어요.
쑥쓰럽기도 하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칭찬받는 것도 익숙치 않고, 또 입에 발린 말 같기도 하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말들은 기억에 꽤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이런 칭찬과 치하의 말들이 사람을 세웁니다.
저도 일본 선교 기간 동안 이런 칭찬들을 많이 받았고, 아직도 이런 말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평범하게 예배 준비하고 설교를 해도,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칭찬을 하고 치하의 말을 했습니다.
예배를 위해 주보와 파워포인트를 만들고, 설교와 성만찬을 준비하는 일은 목사라면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면 일본 교회 사람들은 칭찬을 많이 해 주었어요.
설교가 좋았다, 예배 준비가 완벽했다, 예배에 은혜를 받았다, 심지어 성만찬을 받고 감동했다 등등… 별 것 아닌 일에 디테일 하게 칭찬하고 반응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 일본 선교가 외롭지만은 않았습니다.
모든 일본 교회나 모든 일본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요.
엄하고 칭찬에 인색한 교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일했던 교회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제가 두 교회를 담임하고 한 교회에 협동 목사로 있었는데, 적어도 이 세 교회의 사람들은 저에게 많은 칭찬과 치하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에서 칭찬을 잘 하는 목사가 되고 싶었는데… 제가 한국에 적응을 너무 잘한 것인지, 아니면 제가 칭찬에 인색해서 그런지, 칭찬의 말이 잘 나오지를 않습니다.
반성하고, 오늘부터는 상대방을 열심히 칭찬하고 세우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과 입술을 주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친척과 지인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요즘은 이 “미쳤다”는 말이 “대단하다”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들은 이 “미쳤다”라는 말은 제 정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저 폄하하고 비방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설명해내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예수님의 인기는 급 상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소문은 예수님의 친척들과 지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친척들과 지인들은 이를 부정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미쳤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폄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친척들 뒤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 즉 율법 학자들이 등장을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고 합니다.
귀신 중에 왕 귀신이 들려서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립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분열과 분쟁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사탄은 사탄을 쫓아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24~26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내분과 분쟁은 공동체를 파괴시킵니다.
그것이 사탄의 공동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분쟁하면 어느 나라든, 어느 집이든, 어느 공동체든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이 사탄의 공동체에게만 향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공동체를 향한 말씀이고, 당시 유대를 향한 말씀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행한 예수님에게 미쳤다고 했고, 귀신의 왕의 힘을 입었다고도 했습니다.
이는 유대를 세우는 일이 될 수 없었고, 망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진 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선지자들을 박해했던 것처럼, 유대도 예수님을 박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과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판단에는 맞지 않다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이러한 일들이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폄하하고, 비방하고, 꼬투리를 잡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신과 다르면 상대방에게 거침없이 분노합니다.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서로를 깎아 내립니다.
정치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분열의 영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가 어떻게 설 수 있을까요?
이런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분쟁하면 나라가 설 수 없고 집이 설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적어도 우리 양주 교회 사람들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의 한 일을 치하해야 합니다.
그 일이 내가 볼 때는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의 수고에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덕을 세우는 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박해가 있더라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서로 덕을 세우는 교회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서로 덕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에도 칭찬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양주교회는 개척 단계에 있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도 아니고, 큰 헌금도 아닙니다.
기초를 세우고 있는 단계이니, 이 기초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서로 덕을 세워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서로를 칭찬하고 위하며 하나가 되어가는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를 더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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